[취재파일] 기후, 언어 형성에도 영향

안영인 기자 2015. 2. 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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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연에 가보면 연주자들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악기에서 무엇인가 빼서 물에 살짝 담그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악기와 입을 연결해주는 부분에 있는 '리드(reed)'라는 것을 빼서 물에 살짝 적시는 모습이다.

리드는 공기를 불어 넣으면 부르르 떨면서 소리를 내는 얇은 진동판을 말하는데 색소폰 같은 관악기는 주로 갈대 줄기로 만든 리드를 사용하고 아코디언이나 하모니카 같은 악기는 금속으로 만든 리드를 사용한다. 풀피리는 일종의 리드만으로 이뤄진 악기다. 중요한 것은 리드가 촉촉이 젖어 있을 때 진동이 제대로 되고 원하는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연주자들이 연주 시작 전에 리드를 물에 살짝 적시는 이유다(자료:파퓰러음악용어사전).

우리 몸에도 악기의 리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성대다. 성대가 촉촉하게 젖어 있을 때 원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쉽게 나온다. 말을 많이 하거나 노래를 하기 전에 물을 마시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면 혹시 기후가 언어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 덥거나 추운 기후, 건조하거나 습한 기후가 오래 지속될 경우 음성에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언어라도 기후가 비슷하면 혹시 말투나 음의 높낮이, 강약, 음색에 비슷한 점은 없을까?

최근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공동 연구팀은 기후 조건이 세계 각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소리가 형성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언어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기온이나 습도, 기압, 식생분포, 지형 등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연구결과는 미국과학원회보(PNAS) 최근호에 실렸다(Everett et al, 2015).

연구팀은 전 세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소리[音] 표본 3천 756개에 대해 그 지역의 기후 조건, 특히 주변 공기의 건조한 정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조사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중서부 아프리카 지역처럼 고온 다습한 열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사하라 사막이나 미국 서부, 호주 사막, 고비 사막처럼 공기가 건조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보다 상대적으로 음색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기가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데 주파수가 하나인 기본적인 소리 뿐 아니라 다양한 주파수로 구성된 복합음(複合音,complex tone)을 사용하는 반면 공기가 건조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음색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는 것이다.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음성은 다양한 악기가 연주하는 듣기 좋은 오케스트라 소리 같았다면 건조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음성은 상대적으로 하나의 악기가 일정하게 한 가지 소리만 내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습도가 언어의 소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 지속적으로 건조한 공기가 들어오면 후두가 메마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성대의 탄성력이 떨어져 복합적이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리드가 바싹 말라버리면 악기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사람들이 특정 기후 조건에서 오래 사는 동안 성대 또한 그 지역의 기후 조건에 적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 지역의 기후 특성에 맞는 언어의 소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언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기후 조건이 언어를 만들어나가는데 한 가지 영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기후가 음색의 다양함이나 음의 높낮이, 강약, 빠르고 느린 것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살고 있는 지역의 기후 조건에 맞게 적응된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 또한 기후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를 적용할 경우 건조한 지역의 언어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따뜻하고 습한 지역의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색의 다양성이 더욱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연구팀은 전망했다. 훗날 어느 언어학자는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기후변화 때문에 세계 곳곳의 언어가 그 이전과 달리 이렇게 저렇게 달라졌다는 논문을 발표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 Caleb Everett, Damian E. Blasi, Sean G. Roberts, 2015: Climate, vocal folds, and tonal languages: Connecting the physiological and geographic dot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201417413 DOI:10.1073/pnas.1417413112안영인 기자 young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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