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공공성 '꼴찌 국가' 한국..세월호와 '공공성'

조성원 기자 2014. 11. 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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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이어져 온 세월호 사태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 것입니다. 한국 근대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세월호 사태'로 부르겠습니다.

세월호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닙니다. 급격한 경제성장이 불러온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그 배경에 있다고들 말합니다. 성장 지상주의, 생명 경시 같은 가치관은 어느새 우리의 지배적인 가치관이 됐고, 그 결과 세월호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부분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SBS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소장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1년 동안 공동 연구한 결과 그 해답은 '공공성'에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공공성이 높았다면 세월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공공성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공공성은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된 성질'(표준 국어대사전)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가치관이나 제도 등이 존재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이 공공성을 네가지 항목으로 분류합니다. 즉 공익성과 공정성, 공개성, 그리고 공민성입니다. (이하에서는 공민성은 민주적 시민성으로 부르겠습니다.) 가치관과 제도가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가, 의사결정 과정은 공정한가, 정보는 충분히 공개되어 있는가, 그리고 시민들은 충분히 참여하고 충분히 의견을 표출하는가 입니다. 민주적 시민성은 '숙의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합니다.

[ 공공성의 4대 요소 ]

세월호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들은 모두, 이 공공성에 역행하는 방향이었습니다.

선령 21년의 세월호가 일본에서는 운항이 불가능했지만, 한국에서는 운항이 가능했다는 점은, 승객의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보다는 청해진 해운의 이익을 위해 규제가 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공익성)

사태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를 뒤덮고 있는 관피아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사적 집단으로,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지 못 했습니다. (공정성)

구조 과정에서 관련 기관들이 보여준 무능과 혼란, 비밀주의와 책임 떠넘기기는,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의 공개성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개성)

그리고 우리 사회가 유족들에게 인내와 망각을 요구하고 있는, 그래서 단원고 아이들을 포함한 유가족들이 직접 대국민 호소에 나서는 지금의 상황은, 시민참여라는 시민성에 의문을 던지게 합니다. (시민성)

즉, 세월호 사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공공성'에 빨간 불이 켜졌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경고등인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성이 높은 국가들은 국가적 위기를 공공적인 제도와 가치관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의미인 네덜란드는, 이로 인한 각종 재해를 이겨내기 위해 지난 1953년부터 '델타 프로젝트'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는 물론 정치권의 정파를 넘어선 합의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지난 2011년 '원전 폐기'를 선언한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의 원전 폐기 선언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즉흥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 이미 1970년대부터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준비한 결과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정치권과 독일 사회의 공공성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 보다는 공공성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의료보험의 사례에서 보듯 공익성과 공정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공공성을 구성하는 4가지 요소 중 나머지 2가지인 공개성과 시민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따라서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당시 불거진 각종 문제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개선해, 이후에 닥친 각종 사고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공개성 즉 투명성과,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 형성된 시민성이라는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두 나라, 일본과 한국은 어떨까요? 일본과 한국은 비슷할 정도로 공공성이 낮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후쿠시마라는 사건을, 한국은 세월호라는 사태를 맞아 국가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그동안 경제발전에 가려 부각되지 않았던 일본 정부의 부패와 불투명성, 그리고 한국의 관피아와 비슷한 '원자력마을'(원자력 관련 이해관계집단)의 결과로 발생한 예상된 사고였습니다. 한국의 세월호와 너무도 흡사합니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네덜란드와 독일,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공공성을 구체적 수치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공공성은 어느 수준일까요? 연구 결과 OECD 33개 국가들 중 꼴찌인 33위였습니다. 네덜란드는 11위, 독일 12위, 미국 24위, 일본 31위였습니다. (참고로, 1-4위는 대부분의 조사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가 차례대로 차지했습니다)

[ 공공성 순위비교 (자료 : SBS-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공동연구) ]

항목별로 보면 한국은 공민성이 꼴찌에서 2위(꼴찌는 헝가리), 공개성은 꼴찌에서 3위(한국 아래에는 이탈리아와 헝가리), 그리고 공정성과 공익성은 꼴찌인 33위였습니다. 한국은 최근 정보공개와 관련한 움직임이 많다 보니 공개성은 그나마 꼴찌는 아니었던 것 같고, 시민성 역시 다른 항목들과 비교해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공공성이 낮다 보니 산재사망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위험관리 역량은 매우 낮았습니다. 재난이 발생한 직후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탄력성도 매우 낮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 공공성 순위비교 ]

한국 사회의 공공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정부와 정치에 책임을 묻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 맞습니다. 세월호 사태를 통해 본 한국 정부와 한국 정치의 수준은 매우 낮았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정부와 정치의 책임뿐일까요?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 하나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진은 분석 대상 5개국 국민들이 가진 '가치관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분석에는 세계은행이 실시하는 '세계가치관조사' 통계치가 사용됐습니다. 가운데 있으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이고, 주변으로 갈수록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입니다.

분석 결과,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관용' 수준이 매우 낮고, 대신 '경쟁'이나 '성공'에 대한 중요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성장지상주의나 이기주의 같은 단어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들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공공성 수준이 높은 네덜란드인들은 '관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독일이나 미국인들은, 경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관용'이나 '평등', '연대' 등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 네덜란드인의 가치관 구조 (자료 : 세계가치관조사) ]

반면 일본과 한국인들은 '경쟁'이나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고, '평등'이나 '관용' 등은 머릿속에 거의 없었습니다. 사회나 공동체가 함께 공존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셈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세월호 사태를 비롯한 각종 사고로 이어졌다고 연구진들은 결론지었습니다.

[ 한국인의 가치관 구조 ]

세월호 사태를 두고, 우리는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가치관 조사를 통해 바라본 우리 자신의 모습은, 세월호 사고에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 한사람 한사람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태 이후 새로 만들어야 할 한국 사회는, 경쟁보다는 연대를, 성공보다는 관용을 더 중요시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에 그런 제도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동시에, 과연 우리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치를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에 타고 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우리 단원고 아이들과 승객들도, 남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것을 바랄 겁니다.

▶ [취재파일] 후쿠시마 원전, 그리고 일본 사회의 변화

▶ [취재파일] 우리는 왜 참사에서 배우지 못하나? 조성원 기자 wonni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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