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공무원 국외출장, 국외여행 되지 않게 하려면..

박세용 기자 2014. 9. 25. 13: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문화재청 직원들의 외유성 국외출장 실태를 한 언론사가 보도했습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신의진 의원실에서 구체적인 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문화재청 직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문화재청 직원이 외국에 나가 문화재를 둘러보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국외출장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국제회의가 있고, 특정 업무 수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자료수집이나 견학, 참관이 있는가 하면, 포상이나 격려 차원의 출장도 있습니다. 이 가운데 후자, 즉 단순한 견학이나 참관, 포상 차원의 출장이 늘었다는 게 신 의원실의 분석입니다.

예산을 보면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외유성 짙어 보이는 국외출장 예산이 10억1,714만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단순한 견학이나 참관, 포상 차원의 출장 예산이 최근 몇 년간 부쩍 늘고 있습니다. 2013년 예산은 2010년과 비교해 60% 넘게 늘었습니다. 이 기간에 문화재청과 산하 기관 직원들 577명이 국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연도 별로 보면, 2010년엔 89명이었는데, 2013년엔 221명으로 외국물을 먹고 온 사람이 늘었습니다. 견학이나 참관, 이런 건 사실 국외출장이라기보다, 국외여행 아니냐는 게 의원실 지적입니다.

어디를 갔느냐, 왜 갔느냐를 보면 외유성이라는 의혹이 짙어집니다. 직원들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가장 많이 간 나라는 스페인입니다. 매년 빠지지 않고 방문했습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두 번씩 스페인을 가서, 5년간 모두 7차례 스페인 국외출장이 있었습니다. 출장 사유는 비슷했습니다. 2010년엔 해외 선진유적지 정비사례 조사, 2011년엔 스페인 문화유산 보존관리 현황 조사, 2012년엔 지자체 문화재 보존관리 역량 강화, 2013년엔 주요 선진국 자연유산 보존관리 현황 조사 및 선진 우수 사례 조사, 그리고 올해는 근현대 문화유산의 등록 유형 다양화를 위한 문화유산 보존 활용 실태조사입니다. 출장보고서를 꼼꼼이 읽지 않고서는 상당히 헷갈립니다.

스페인은 한 번 갈 때마다 4~8명의 직원이 함께 갔습니다. 기간은 짧게는 7일에서 길게는 13일까지 이어졌습니다. 특히 올해 4월 11일부터 19일까지는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직원들이 이탈리아로 자료를 수집하러 출장을 떠났는데, 여기에 기획재정을 담당하는 직원이 1명 있었다고 신 의원실은 지적했습니다. 국외출장때 슬쩍 끼어 가기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궁과 유적 관련 기관을 방문해 궁능을 담당하는 우리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 출장 목적이었는데, 뜬금없이 기획재정 담당 공무원도 이 역량을 함께 강화한 셈이 됐습니다.

공무원은 국외출장을 다녀오면 정해진 기간 안에 보고서를 써서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부 보고서는 마치 대학 리포트처럼 베끼기를 통해 반복 재생산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간단히 복사해 붙여 넣은 보고서를, 신 의원실 보좌진이 찾아냈습니다. 한 공무원은 국외출장 보고서에 이렇게 기록했는데,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온 글과 완전 똑같습니다. 아, "프랑스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라는 문구를, "가장 인상 깊은 건물 중 하나로"로 창의적으로 개작했군요. 어미도 살짝살짝 손댔네요, 못 찾을 뻔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건물 중 하나로 ,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이 되풀이 되었으며, 현재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으로 건물의 규모는 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른다." (문화재청에 제출한 국외출장 보고서)

"프랑스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 페르난도 3세가 1227년 건설을 시작하여 266년이 지난 1493년에 완성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증축와 개축이 되풀이되었다. 현재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건물의 규모는 길이 113m, 너비 57m, 중앙의 높이 45m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실 이런 얼렁뚱땅 국외출장 보고서는 비단 문화재청뿐만이 아닙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국외출장 보고서를 보면, 내용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책임연구원이 요르단 암만에 다녀온 뒤에 작성한 국외출장 보고서 내용입니다. 내용이 워낙 간략한데, 제가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이게 전부입니다. 국외출장 기간은 1주일입니다. 요르단에서 무슨 일을 하고 오셨는지는, 아직도 미궁입니다.

■ 한국원자력연구원 A연구원이 제출한 국외출장 보고서

■ 파견지역- 요르단(암만)

■ 파견목적- JRTR 사업 1차 PRM

■ 수행업무- 사업 진도 점검회의 및 기술현안 회의, 유체계통 설계분야 설계 진도 발표

■ 수집자료 및 내용- 회의록 미제출

■ 성과 및 기대효과- 설계 진도에 대한 상호이해 증진, 환경 데이터 수집의 필요성 설명 및 협력 유도

이렇게 보고서를 몇 줄이라도 써서 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미래부 산하 지질자원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2012년 9월 15일부터 23일까지 유럽 3개국에 국외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친환경 우수국가인 독일과 벨기에 등 유럽의 자원 순환 관련 환경정책을 조사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또 지난해 1월 19일부터 26일까지는 국제 위탁연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인도를 갔다 왔습니다. 이 연구원은 이렇게 일주일씩 유럽과 인도를 다녀왔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간단한 보고서조차 내지 않아 감사에서 적발됐습니다. 경고를 받았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은 자체 감사에서 이런 보고서 생략 실태를 지적할 정도입니다. "국외출장 귀국보고서를 늑장 제출하는 사례가 많다, 독촉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외여행을 국외출장으로 미화하는 실태, 물론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있긴 합니다. 대통령령인 '공무 국외여행 규정'에 따라, 단순한 참관이나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한 국외출장은 여행 타당성을 심사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도록 한 겁니다. 이 심사위원회는 기관의 감사와 인사, 국제업무 담당 부서장을 포함해야 합니다. 또 '공무 국외여행 업무 예규'에 따르면, 업무에 관한 지식 및 국제적 시야·경험을 넓히기 위한 국외여행은 사전심사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각 기관마다 이런 사전심사를 형식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좋은 게 좋다는 식입니다. 사전심사를 가장 쉽게 무력화시키는 것은 심사위원 구성에 손을 대는 것입니다. 규정에 따라 국외출장 사전심사위원회를 꾸리되, 부서장이 아니라 연차가 높지 않은 직원들을 위주로 구성하면 됩니다. 간단한 꼼수입니다. 기관 내부에서 알아서 하는 거라서, 외부 감독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상사들이나 임원급이 결재 올린 출장 심사에 부적합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병장이 휴가 가겠다는데, 일병이나 상병이 어디 부적합 의견을!

미래부 산하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사례를 보면 이렇습니다. 국외출장 사전심사위원회 명단을 받아봤더니 총 7명으로 돼 있습니다. 위원장은 부장급입니다. 아래 직원들도 많지만, 위에 선배들도 상당히 많은 중간 위치입니다. 나머지 심사위원 6명은 부장 아래 팀장급입니다. 부장 위에 본부장, 그리고 그 위에서 임원이 가겠다는 국외출장은 사실상 원안 통과입니다. 하이패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국외출장을 서류로 사전 심사한 결과들을 봤더니, 심사위원이 부적합 의견을 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예스맨입니다. 사전심사는 심사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행정 절차가 됐습니다. 감사원도 이런 문제에 공감해서, 지난 2011년 전자통신연구원에 대한 감사에서 심사위원회를 감사와 인사, 국제업무 담당 '부서장'을 포함해 구성하도록 통보했지만, 지금껏 변화는 없습니다.

저희 기자들도 회사 예산으로, 혹은 외부 기관 예산으로 가끔 국외출장을 갑니다. 출장 가면 일도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생경한 풍경과 새로운 먹을거리도 재미납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과를 요구받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국외출장 갔다 와놓고, 가봤더니 경치는 좋은데, 기사는 안 되던데요? 기사 안 쓰면 안 될까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낸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을 모아 일주일간 스페인과 터키, 독일과 벨기에, 인도를 다녀와 놓고, 출장보고서 대신 머릿속 추억만 남기는 국외출장. 납세자들은 그런 걸 원치 않습니다. 국외출장, 필요한 건 가야겠지만, 먹튀 방지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겠습니다.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