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가해 장교 징계하랬더니 재취업시킨 軍

김수형 기자 2014. 8. 1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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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앞의 생쥐'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을 선택한 故 한현우 상병

"대장 XXX 두고 보자"

故 한현우 상병의 짧은 유서는 적개심과 좌절감을 동시에 담고 있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복수와 증오의 감정을 담고 있지만, 두고 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이 느껴집니다. 상대는 일개 상병 나부랭이가 어찌할 수 없는 소령 계급의 헌병대장이었습니다. 결국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대장에 대한 복수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숨이 끊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로 한 상병은 한 달 반 동안이나 모진 숨이 붙어 있었습니다.

건장한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착각했던 부모는 사실상 주검이 돼서 돌아온 아들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 아버지는 이가 전부 빠졌습니다. 어머니는 밤마다 아들의 환청을 들었습니다. 부모는 아들을 살려보려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한 상병은 육군 병원의 차가운 침상 위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한 상병은 헌병대장에게 시범타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선임병에게 정강이를 수십대 맞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헌병대장은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피해자인 한 상병의 휴가를 잘랐습니다. 그 뒤로도 부대 장병 교육을 하면서 실패한 군생활의 사례로 한 상병을 들었습니다. 밥을 먹고 있으면 이유 없이 뒤통수를 때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하도 외박, 외출을 잘라버려 한 상병은 외박을 나가기 위해 꾀를 냈습니다. 해군에 있는 친구가 죽었다는 말을 어머님께 들었다며 문상을 가야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A 소령은 해군에 직접 확인해 사실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밤늦게 한 상병이 직접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스스로 말하게 하는 모욕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영창을 보내버리겠다고 해놓고는 다음날 총기를 휴대하는 경계근무를 내보냈습니다. 이렇게 점점 코너에 몰리는 생쥐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상병은 유서를 한 장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2008년도에 뉴스추적팀에 있을 때 부대장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총기 자살한 한현우 상병을 취재하기로 결심한 이유였습니다. 비록 한 상병은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부대 내 가혹행위로 목숨을 끊은 장병들에게 적절한 보상의 길이 열리고 가해자가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기를 원하는 소박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가해 소령 처벌하랬더니 "이중 징계 못해…군무원 취업도 못해"

'누가 내 아들을 죽였나'라는 제목으로 뉴스추적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 지 6년이 지난 뒤, 한현우 상병은 국가를 상대로 작지만 의미있는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국가가 순직으로 인정한 겁니다. 수많은 우여 곡절이 있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가해 소령의 처벌을 요청하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순직 처리하는 걸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한 상병은 두 달 전 대전현충원 자신의 자리를 찾아 영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한 상병의 쟁취는 절반의 승리에 그쳤습니다. 가해자를 징계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방송 당시에도 사단장의 서면 경고에 그쳤는데, 군이 국가인권위의 권고까지 깡그리 무시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국가인권위는 A 소령이 한 상병 죽음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고 표현했습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

"피해자로 하여금 A 소령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 그 자신에 대하여 총격을 가하여 자살을 감행하도록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점은 피해자가 자살하기 직전에 근무일지에 A 소령에 대한 반감을 적어놓은 부분을 보면 충분히 짐작된다"

육군의 해명은 궁색합니다. 이미 서면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중징계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마치 인권의 수호자 같은 해명입니다. 인권위에 보낸 해명에는 A 소령이 불이익을 받은 게 분명하다고 명시해놨습니다. 예비군 지휘관이나 군무원으로 취업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뒤늦게 드러난 軍의 거짓말…가해 장교는 화려한 군 생활 2막 시작

최근 윤일병 사건 이후 군 부조리 사건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A 소령이 화려한 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자신의 계급 정년을 무사히 마치고, 군 교도소 과장 자리에 응모해서 특채된 겁니다. 군무원으로 군 생활 2막을 시작한 겁니다. 분명 육군이 인권위에 보낸 회신문과는 정반의 결과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일어났던 걸까요?

육군의 해명이 기가 막혔습니다. A 소령이 사고 직후 서면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그게 징계는 아니라는 겁니다. 인권위가 징계하라고 했을 때는 서면 경고도 징계라며 이중징계를 할 수 없다고 버틴 군이 이제야 서면 경고는 징계가 아니라고 시인했습니다. 인권위에도 거짓 해명을 하며 버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겁니다. 사병들의 징계에는 냉혹한 군이 영관급 장교의 징계에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올법한 행위입니다.

채용 과정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심사가 제대로 된 건지 물어봤지만, 서면 경고로는 군무원 채용에 결격사유가 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신의 괴롭힘으로 휘하 사병이 죽음을 선택했는데, 너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게다가 군 교도소는 문제 사병이 법원의 유죄를 받고 들어와 있는 곳인데, 이런 곳에 가혹행위 전력이 있는 장교 출신 인사가 근무하는 것도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이 기본

한 상병의 아버지 한철호 씨는 아들의 무덤 앞에서 "가해자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너만 왜 여기 누워있냐"고 울부짖었습니다. 거짓말과 버티기, 제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던 군에 대해 부모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해 보였습니다. 군 당국이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 수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 가혹행위 피해자 가족 가운데 이런 대책들이 실효성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을 거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하게 문책한다는 기본을 군이 그동안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독] 가혹행위 장교, 징계는 커녕…군무원 채용 (8월13일 8시뉴스) 김수형 기자 se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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