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프란치스코는 '빨갱이 교황'?

권종오 기자 2014. 7. 3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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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을 표현하는 수많은 형용사를 2개의 영어 단어로 요약하면 'Humble'(겸손)과 Humane'(인간적)이 될 듯합니다. 그의 낮은 행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주교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작은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교황에 선출될 때에도 붉은 모제타(어깨망토)가 아닌 흰색 수단을 입었습니다. '어부의 반지'는 순금이 아니라 도금한 은반지였고 가슴에 다는 십자가도 평범한 철제 십자가를 이용했습니다. 노숙자를 만나러 잠행하고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리는 사람을 안고 입을 맞추며 청소년과 격의 없이 셀카를 찍는 등 소탈을 넘어 파격적인 모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교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황의 행동은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발적이고 꾸밈없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그의 애정을 나타냅니다. 그는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추구하고 남들과 대화할 때 어렵고 복잡한 표현 대신 단순명료한 언어를 선택합니다. 자신이 평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두 얼굴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오랜 논란인 여성사제, 동성애,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전임 교황보다는 진보적이지만 그래도 온건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정의, 특히 경제 불평등에 대해서는 깜짝 놀랄만한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의 모토는 자비의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그리고 연대 3가지입니다. 교회가 사회적-경제적 불평에 맞서는 정의의 변호자이며 가난한 사람의 보호자가 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교황은 특히 현대인들이 맹신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물신주의'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그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 나온 관련 발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척의 경제는 안 된다'(53페이지)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이 인간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분명한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배척과 불평등의 경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제는 사람을 죽일 뿐입니다. 나이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 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배척입니다."

'돈의 새로운 우상은 안 된다'(55페이지)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가 돈에 대한 물신주의라는, 그리고 참다운 인간적 목적이 없는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라는 새롭고도 무자비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봉사하지 않고 지배하는 금융제도는 안 된다'(57페이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 갖지 않는 것은 그들의 것을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것입니다."

'우리는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152페이지)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잘 들어주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소수의 재화 독점 극복해야'(154페이지)

"연대성은 어쩌다가 베푸는 자선 행위 이상의 것입니다. 이는 소수의 재화 독점을 극복하고 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사람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전제로 합니다. 연대는 재산의 사회적 기능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 사유재산에 앞선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재화의 사적 소유는 그 재화를 보호하고 증진하여 공동선에 더 잘 이바지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연대는 가난한 이들에게 속한 것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결정으로 실천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런 언급은 가톨릭교회 안팎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교황청과 로마 가톨릭의 일부 보수파들은 "교황이 해방신학을 신봉하는 것 아니냐?" 면서 "교황은 마르크시스트"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자본주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은 심지어 "프란치스코는 붉은 교황"(Red Pope)이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최고 지도자에게 '빨갱이'란 매카시즘적 딱지를 붙인 것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말 마르크시즘을 신봉하는 '마르크시스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교황은 지난해 12월 15일 이탈리아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르크시즘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인간성이 좋은 마르크시스트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르크시스트란 말이 그렇게 불쾌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권종오 기자 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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