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그래서' 전쟁은 계속된다

김영아 기자 2014. 7.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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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봤던 '칸다하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내전으로 피폐화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을 그린 영화입니다. 그 영화를 본 게 벌써 십수 년 전이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이 있습니다. 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은 사람들 수십 명이 적십자사가 비행기에서 던져주는 의족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는 장면입니다. 어떤 이는 목발을 짚고, 어떤 이는 목발도 없이 한 다리로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서 의족을 차지하기 위한 경주를 벌입니다.

푸른 하늘에선 의족 상자를 매단 낙하산들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누런 사막에선 다리가 하나 뿐인 사람들이 그 낙하산을 쫓아 기우뚱거리며 사력을 다해 달리는 처절한 대비. 그 사람들이 가쁘게 몰아쉬는 숨과, 일그러진 얼굴들, 그 속에 담긴 '어떻게든 먼저 저 의족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 장면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과 대상이 누군지도 모를 분노에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었습니다. "아, 전쟁이란 저런 것이구나. 전쟁 속에서 산다는 건 저런 것이구나."

요즘 그보다 더한 장면을 일상으로 봅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가자지구 곳곳의 현실은 하나뿐인 다리로 의족을 차지하기 위해 뛰던 아프간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더 비통하고 처절합니다. 어제는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과 지상군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신생아들이 여럿 누워있는 가자지구의 한 병원 영상을 보며 울컥했습니다. 그 작은 몸 여기저기 이런저런 튜브를 달고 누워있는 한 아기의 가슴이 심장 박동에 따라 팔딱팔딱팔딱 바쁘게 뛰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너무나 애처로웠습니다.

가자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발전소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장면을 보면서는 내 일처럼 분하고 화가 나서 탄식이 나왔습니다. 하나뿐인 발전소가 파괴됐다는 건 그동안 그나마 하루 3시간씩 공급되던 전기가 이젠 완전히 끊긴다는 뜻입니다. 전기로 돌리던 양수기도 멈춘다는 뜻입니다. 세수할 물은커녕 마실 물도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해가 지고 나면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시커먼 하늘을 가르며 수시로 날아드는 포탄의 섬광 말고는 어떤 불빛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입니다. 전쟁 속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입니다.

엊그제 한 후배가 출산했습니다. 그 후배에게 더운데 고생했다고 전화했더니 "앞으로 출산의 고통 어쩌고 하는 남자들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농담을 하더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그 크기와 무게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 참 많습니다. 전쟁의 고통이야말로 그럴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공습 사이렌 소리와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불안에 떨고 있을 가자지구 주민들이 이 글을 본다면, "아, 전쟁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는 제 얘기를 듣는다면, 당장 물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대체 전쟁에 대해 뭘 안다는 겁니까? 전쟁 속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당신이 도대체 뭘 얼마나 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사실 외신에 들어오는 단편적인 영상들과 '오늘은 사망자 몇 명, 부상자 몇 명, 그래서 총 몇 명' 하는 숫자들뿐입니다. 이런 단편적인 영상과 숫자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비참하고 절망스러운데,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가끔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면 제게 묻습니다. 뉴스를 보면 이스라엘이 너무하는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이스라엘을 말리지 못하느냐고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말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듯합니다. 미국도 유엔도 모두 말로는 계속 휴전을 '촉구'하고 있지만, 막무가내로 공격을 계속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어떤 실질적인 대응책이나 제재안도 내놓지 않고 있으니까요. 우크라이나 반정부 세력을 뒤에서 조종한다는 이유로 러시아에 경제제재까지 부과하고 나선 것과 비교해도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 이른바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자제를 촉구한다면서도 그때마다 꼭 한마디 씩 덧붙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마스로부터)스스로를 지킬 권리를 지지합니다."

물론, 가자사태 못지않게 큰 이슈인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러시아에 책임을 묻는 게 잘못됐다는 말은 아닙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특히 그 여파로 최근엔 민항기가 피격돼 3백 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는 엄청난 비극까지 발생했습니다. 더이상의 희생과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어떻게든 러시아에 변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민항기 피격은 적어도 고의적인 공격에 의한 건 아니었습니다. 포탄 안에 수천 개 쇠화살을 넣어서 민간인 주거 지역에 마구 퍼붓는 이스라엘의 '자위권' 발동과는 잔혹성 측면에서나 비인도적인 정도에서나 차원이 다른 얘깁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막무가내식 가자 공격에 대한 서방의 태도야말로 '국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방 국가들의 이중잣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일 겁니다. 그 이유는 물론, 러시아와 달리 이스라엘은 서방의 '우방'이기 때문이겠죠. 이스라엘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하마스는 '이슬람 테러단체'고요.

결국, 가자지구의 죄 없는 민간인들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건 우방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의 잘못을 모른 척 눈감고 있는 서방의 방조와 무관심입니다. 힘 있는 이에게는 약하고 힘 없는 상대에게는 강한 서방의 이중성입니다.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제 잇속만 따지는 서방의 이기심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자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자에선 학교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병원이 무너집니다. 일가족이 집안에서 몰살당합니다. 놀이터가 피로 물들고 있습니다.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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