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승진도 '벼락치기', 실적보단 '정치력'..인사철 꼴불견 풍경

추가영 / 안정락 / 김은정 / 임현우 입력 2014. 12. 16. 03:31 수정 2014. 12. 16.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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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 평판 쌓기 발버둥..일은 못해도 아부의 王 읍소에 밀리고 '뒷문'에 치이고, 2년째 물먹은 승진..의욕 상실 인사 때마다 뒷담화에 '귀 쫑긋'..낙엽처럼 엎드리는 것도 전략

[ 추가영 / 안정락 / 김은정 / 임현우 기자 ]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요즘 일이 손에 통 안 잡힌다. 지난주 수요일에 이미 발표됐어야 할 인사 발령이 아직 안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결국 12월31일에야 공고가 떠 송년회가 지방 발령자들의 송별회가 돼 버린 기억이 또렷하다.

연말 정기 인사철만 되면 직장인들의 눈과 귀는 인사 소식에 쏠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연중 보기 힘들었던 이상 행동이 나오기 시작한다. 출근 시간을 앞당기고 퇴근 시간은 늦추면서 '벼락치기'로 평판 만들기에 나서는 건 애교다.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상사에게 애교를 떨고, 때론 눈물로 호소하는 드라마 세트장 같은 풍경도 펼쳐진다.

모두 '꼴불견'이지만 어쩔 수 없다. 보기 싫으면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도 한 전략이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란 한 인기 드라마의 대사도 있지 않은가. 연말 정기 인사시즌을 보내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우여곡절 사연을 들어봤다.

인사 앞둔 사내 채팅방엔 뒷담화만 무성

금융회사에 다니는 양모 대리는 요즘 출근 시간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빨라졌다. 유난히 아침 잠이 많아 항상 아슬아슬하게 맞춰 출근하던 양 대리지만 위기감 때문인지 저절로 눈이 떠졌다. 위기감의 발로는 다름 아닌 내년 초로 예정된 정기 인사다.

양 대리가 속한 부서 팀장은 리더십이 있으면서도 부원들을 잘 챙겨 사내에서는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로 꼽힌다. 그래서 일단 부서에 남고 싶은 마음에 출근 시간이라도 앞당긴 것. 양 대리는 요즘 부원들이 모두 출근하면 슬쩍 나가서 커피를 사와 한 잔씩 돌린다. "팀장에게만 드리면 너무 티 나잖아요. 은근히 인심 쓰는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점수 따고 싶은 심정인 거죠."

인사 정보 교환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도 동원된다. 직장인을 위한 앱에 최근 국내 대기업 A사의 채팅방이 개설됐다. 연말 인사시즌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뒷담화'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엔 김모 본부장의 경질설이 올라왔다. 언제 어떻게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돌았다. 친한 직원끼리는 누가 게시물을 올린 것이라고 추측하며 각종 루머도 난무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원 간 '취재'도 이뤄진다.

"노력, 실적보다 결국 정치인가요."

중소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박모 과장(38)은 지난주 인사 결과를 보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인사에서 박 과장은 차장 승진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물을 먹었다. 박 과장을 더욱 괴롭힌 건 평소에 일 못하기로 소문 난 선배 윤모 차장(45)이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했다는 사실이다.

윤 차장은 아이디어도 부족하고 지각도 잦은 인물이다. 그러나 상사들에게 아부하는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박 과장은 "정치는 직장생활에서 필수라지만 인사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니 회사 다닐 맛이 안 난다"며 "노력과 실적만으로 평가받는다는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일하는 최모 과장도 2년째 차장 승진에 실패하면서 완전히 낙담한 경우다. 동료들의 적극적인 자기 어필에 손을 들었다. 지난해엔 동기인 '워킹맘' 박모 과장의 눈물 어린 호소에 당했다. 박 과장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경력관리를 위해 이번 평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등을 팀장에게 말하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결국 박 과장은 최고 등급을 받아 차장으로 승진했다. 올해는 '후배 성과 가로채기'의 달인 김 과장이 최고 등급을 받아갔다. 김 과장이 뭐라고 팀장에게 어필했는지 모르지만 최 과장은 뒷문으로 통하는 이런 인사 시스템에 폭발 직전이다.

벼락치기 평판 쌓기도 효과 있네요

정보기술(IT) 분야의 중견기업 임원인 나모씨(52)는 지난해 초 대기업에서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대기업에서 일할 당시 친한 선배였던 현재 회사의 부회장이 그에게 사장 자리를 보장하겠다며 설득했다. 그런데 올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부회장이 약속과 달리 임원 하나를 더 영입한 것. 더욱이 영입자는 영업 실적이 뛰어나 그의 미래를 위협했다. 마침내 지난여름 부회장은 나씨에게 "사장직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씨는 부랴부랴 실적 쌓기에 나섰다. 각종 사업을 도맡았다. 부하 직원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그는 이달 초 사장직에 올랐다. 나씨는 "이번 인사에서 미끄러졌으면 옷을 벗어야 했을 텐데 정말 조마조마했다"며 "영업하느라 고생한 부하 직원들에게 크게 한턱이라도 내야겠다"고 말했다.

추가영/안정락/김은정/임현우 기자 gyc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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