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동창·부서·동호회까지..왜 하필 모두 같은 날 송년회

김대훈/안정락/김은정/강현우/임현우 입력 2014. 12. 9. 03:31 수정 2014. 12. 9.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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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송년회의 계절' 못 가는 모임에선..혼자 바쁜 척한다고 눈치 보이고.. 송년회 없는 수많은 날엔..사회성 없는 사람같아 민망하고.. 이벤트 송년회라 기대했는데.. 장기자랑 준비·식당잡기 '힘든 숙제'로 차라리 '부어라 마셔라' 회식이 속 편해

[ 김대훈/안정락/김은정/강현우/임현우 기자 ] 유통회사 영업팀 3년차 김모 주임(31)은 11월 말부터 거의 비몽사몽 상태다. '송년회 증후군'이다. 밤늦게 술자리를 하고 다음날 술이 깰 만하면 다시 저녁자리로 불려 나가는 일정이 반복되고 있다. 팀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저녁 약속을 잡는다. 덕분에 한 장 남은 달력도 술 약속으로 빼곡히 차 있다.

본격적인 송년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김과장 이대리들의 간(肝)도 성할 날이 없다. 전처럼 아군들끼리 '붓고 마시는' 자폭 송년회는 줄었다. 영화 관람이나 볼링 등 체육 행사로 송년회를 갈음하자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전투적(?) 송년회 풍습은 곳곳에 남아 있다. 체육 행사를 하더라도 '행사 후 음주'가 관행처럼 굳어지면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얘기가 나온다. 역시 송년회 시즌은 힘들고 괴롭다. 이번주 김과장 이대리는 본격화된 송년회 시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빠질 송년회, 챙길 송년회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김모씨(31·여)는 요즘 달력을 보면서 '참석할 송년회'와 '빠질 송년회'를 고르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창, 동아리, 회사 동기, 금요일에 모여 술 한잔을 하는 '금술모' 등 다양한 송년회 날짜가 잡히고 있지만 겹치는 날짜가 많다. 약속이 겹치는 날엔 혼자 바쁜척 하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반면 약속 없는 날엔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겨질까봐 불안하기도 하다.

김씨가 꼭 참석할 송년회를 고르는 기준은 그 모임에 '썸을 탈 만한' 미혼 남자가 많은지 여부다. 벌써 마지막 연애가 끝난 지 한 해가 넘었다. 기왕 송년회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진대 실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짝을 찾는 데는 목적을 갖고 서로를 재보는 소개팅보다는 평소 알던 사람과 술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더 낫기도 하다. "이대로라면 올해 크리스마스도 외롭게 보내게 생겼어요. '썸남'이라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중견 기업체에서 근무하는 박모 과장은 요즘 회사 선배 김 차장의 연말 일정을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김 차장이 참석하는 송년회 자리에 빠지기 위해서다. 김 차장은 그와 같은 중·고·대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한 하늘 같은 직속선배다. 그러나 두 사람은 5년 전 같은 부서에서 일하며 크게 부딪힌 이후엔 서로 헐뜯는 불편한 사이가 됐다. 회사에선 피해 다니지만 송년회에선 도무지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작년 동문 송년회에선 서로 불편한 티를 내지 않고 친한 척하느라 진땀이 났다. 박 과장은 "연말 송년회 시즌에 김 차장이 출장이라도 가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며 "김 차장의 연말 일정을 알아내 서로 불편하지 않게 피해 다니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차라리 술 먹는 송년회가 낫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신입사원 신모씨는 요즘 송년회 행사 장소를 잡느라 바쁘다. 부장은 부서 송년회 콘셉트를 '이색 파티'로 선언했다. 그럴듯한 장소를 잡는 게 신씨의 임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레지던스호텔을 둘러본다. 그러나 이맘때 레지던스호텔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스트레스 만빵이다.

선배들의 주문도 이어진다. '풍선 이벤트를 준비해봐' '메뉴는 불닭으로 하면 안돼?' 일부에서는 신입 사원들의 '재롱 잔치'도 준비해 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그의 동기 여사원들은 걸그룹 걸스데이 안무를 맹연습 중이다. "차라리 술을 마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게 신씨의 하소연이다.

최근 의류업계로 이직한 한모 대리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모이는 송년회에 나가지 않을 생각이다. 작년 송년회에서 느꼈던 참을 수 없는 '뻘쭘함' 때문이다. 대리와 과장급이 주축인 이 모임은 대부분이 여성이다. 재작년에는 볼링을 친 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고, 작년엔 '퓨전 프랑스 요리'를 먹었다.

제대로 된 송년회라면 맥주라도 마시며 한 해 동안 있었던 일을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는 게 한 대리의 생각이다. 이렇게 고상한(?) 모임은 체질에도 맞지 않고 분위기도 어색하다. 한 대리는 연말이 오면 고깃집과 호프집, 노래방으로 이어지던 전 직장의 송년회가 그리워진다.

◆구조조정에 '서글픈 송년회'

대기업 A사 기획팀에 근무하는 이모 대리는 작년 말 부서 송년회만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12월 부서 송년회는 들뜬 분위기이기 마련. 그러나 몇 년째 매출 부진을 겪던 A사는 올해 3월 정기 인사를 작년 12월로 앞당겨 했다. 인사에서 누락된 고참 간부 중심으로 구조조정까지 벌어지고 나니 작년 송년회는 위로를 위한 자리로 침울하게 진행됐다. 건배사를 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간부도 있었다. 올해엔 송년회가 열리기 전에 인사를 내지 말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최근 A그룹에 인수합병이 결정된 B사의 최모 차장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송년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기업 인수합병 후 신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좌불안석이다. 인수주체인 A그룹 측에선 '고용승계 원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마음은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임원들의 퇴직설 같은 게 들리고 있어 송년회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괴로운 송년회? 기다려지는 송년회도 있어요

괴롭고 어두운 송년회만 있는 게 아니다. 최모 주임(26)이 일하는 공연 기획업체는 올해에도 '마니토 송년회'를 벌이기로 했다. 마니토는 '비밀 친구'란 뜻의 이탈리아어. 제비뽑기로 마니토를 뽑고 한 달간 몰래 챙겨준다. 지난해 송년회에서는 해당 부서 본부장이 최 주임의 마니토가 됐다. 본부장이 한 달간 자신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잘못한 건 없었나'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각오가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본부장과 더 각별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는 올해도 송년모임에서 마니토 행사를 할 예정이다. 지난해 마니토에게는 공개적으로 선물도 준다.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송년회. 생각만 해도 기분 좋지 않나요." 최 주임은 오는 30일 있을 회사 송년회를 기다리고 있다.

김대훈/안정락/김은정/강현우/임현우/강경민/김동현/은정진/추가영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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