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남경필이 정몽준보다 못한 까닭

입력 2014. 8. 25. 10:41 수정 2014. 8. 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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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신이 사회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데 대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적을 만들지 않을 수 없지만,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적을 많이 만들 수도 반대로 자신의 동조 세력을 많게 할 수도 있다. 국민 여론으로 먹고사는 정당과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국민 여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여론이 어떤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만, 정당 그리고 정치인은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이런 평범한 진리를 정치권이 과연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드는 경우가 많다.

먼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처신에 대해 논하자면 이렇다.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는 없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더구나 성인이 된 자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는 더욱 찾기 힘들다. 그래서 남경필 지사 자식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러니까 남 상병의 후임 병사에 대한 폭행과 성추행 의혹이 보도됐을 때, 남 지사가 어떤 참담한 심정이었는지는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남경필 지사의 상황은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 때 정몽준 당시 후보를 연상케 한다. 정몽준 후보는 아들이 SNS에 남긴 글 때문에 곤혹을 치렀다. 당시 정몽준 후보는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며 국민들에게 사죄했다. 남경필 지사도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의 잘못이라며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여기까지는 공감이 간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 남경필 지사가 사죄한다고 말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문제는 그만 덮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여기서 정몽준 후보와 남경필 지사 간 처신의 차이가 났다. 정몽준 후보는 사과 기자회견을 한 이후 나름 자숙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남경필 지사는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지 못했다.

지금 국민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모 일간지에 실린 칼럼 문제만 봐도 그렇다. 남경필 지사는 지난 8월 15일자 한 중앙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을 인용한 뒤 두 아들을 군에 보낸 소회를 전했다. 남 지사는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선친의 마음을 짐작이나마 했다. 자식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의 심정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 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고 적었다.

이 칼럼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의도적인 칼럼이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칼럼은 8월 15일자 신문에 나온 것인데, 남경필 지사가 아들 문제 통보를 받은 날은 8월 13일이었기 때문이다. 신문에 나온 날짜만 놓고 본다면, 남 지사가 장남 문제를 통보받고 난 이후 글을 썼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아들 문제를 물타기 하기 위해, 그리고 나름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길 수 있다.

물론 남 지사 측은, 글을 8월 12일 날 넘겼기 때문에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아들의 불미스러운 사항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보면, 주로 '병장'으로 근무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참고로 남경필 지사의 경우 둘째 아들이 먼저 군대를 갔고 큰아들이 나중에 군대를 갔기 때문에, 둘째가 병장이고 이번에 사고를 낸 장남이 상병이다. 따라서 이 글은 둘째를 걱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그러나 12일 날 글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13일 날 장남 문제를 알게 됐다면, 15일 신문에 이 글이 실리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 이뿐 아니다. 남경필 지사는 역시 8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원 나혜석거리에서 호프 한잔하고 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고 분위기 짱~입니다. 아이스께끼 파는 훈남 기타리스트가 분위기 업시키고 있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 SNS 글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으로 군 문제가 사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이 군에서 폭행과 성추행 의혹 사건을 일으킨 것을 통보받은 상태였다면 사안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13일 날 아들 신상에 관해 통보를 받고도, 15일 날 호프집에서 "분위기 짱~"인 상태로 맥주나 마시고 있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번엔 정당의 처신을 생각해보자. 8월 19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다시' 합의를 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간의 회동에서 합의한 내용은 그동안 핵심 쟁점이었던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위원 4명 가운데 여당 몫 위원 2명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야당의 사전 동의를 받아 추천하기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여당이 자신들 의중대로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허락해야 특검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상 유가족에게 특검 추천권을 부여한 셈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여전히 특별검사 추천권을, 지난 2012년 내곡동 특검처럼 야당에서 갖기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야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 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여당 몫 특검 후보 추천 인사 2명을 야당에 주거나 여야를 합친 4인 전부를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추천할 수 있도록 요구했다. 유가족들이 이렇게 반발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당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추인 유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유가족이 반대하면 여야 간의 합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일이 이렇게 되면 '재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야당이 이렇듯 세월호 유가족 입장을 그대로 따르려 한다면, 차라리 협상에서 빠지는 것이 협상 결과의 유효성과 협상의 속도 면에서 오히려 나을 수 있다. 여당은 야당과 협상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세월호 유가족과 직접 협상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야당은 반발하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야당의 태도는 정치력 부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형편없었다. 협상이 타결됐으면 일단 인정하고 그 다음에 보완을 하든지 해야지 계속 재협상, 그리고 재재협상만을 외친다면 이것은 정당으로서의 합당한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협상에서 이렇듯 존재감이 없을 바엔 차라리 협상에서 빠지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면 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8월 20일 자정을 1분 앞둔 밤 11시 59분에 단독으로 8월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이 와중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자기 당 소속의원 3명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했다는 '방탄국회' 논란까지 야기한 것이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을 지금 개정하려는 요구가 강하기 때문에 한시라도 국회를 비워놓을 수가 없다"며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야당의 태도로 볼 때, 국회를 연다고 세월호 특별법이 처리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진짜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소리를 듣게끔 행동하는 것도 정당으로서 올바른 처신은 아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들 의중을 정확히 밝힐 수 있는 기회는 있을 것이다.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면 된다. 이럴 경우 방탄국회를 소집했다는 소리는 최소한 사라질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방한하는 동안 온 국민은 행복했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사회적 권위', 그러니까 '사회적 어른'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교황과 함께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위로'와 '치유'에 목말라했던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우리 국민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도 불가능하지만, 최소한도 며칠 동안 우리가 느꼈던 '행복감'은 망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것이 지금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다. 그러니까 처신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2호(08.27~09.02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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