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특별법 합의 파기로 민생도 올스톱

2014. 8. 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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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만 봐서는 대의민주주의가 가장 효과적이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잘 반영하는 제도다.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정치제도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어떤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때, 특정 대리인을 내세워 그로 하여금 자신의 권한을 일정 기간 동안 대신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항상 모두 모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리인은 결정권자들이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리 행위의 정통성이 생긴다.

이렇듯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처음부터 장황하게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일들 때문이다.

새정련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양당 원내대표 간의 합의를 단 며칠 만에 '다시 협상'을 주장하며 뒤엎었다. 이런 식으로 양당 원내대표들 간의 합의를 파기한다면 앞으로 국회에서 첨예한 사안에 대해 합의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정치권 스스로가 신뢰를 깎아 먹는 상황을 초래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원내대표는 선출직이기에, 이런 사안을 협상할 때 전권을 갖고 있다고 봐야 타당하다. 더구나 박영선 원내대표는 그냥 원내대표가 아니다. 현재 새정련의 지도부라고 할 수 있는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위원장이다. 그런 대표가 협상을 통해 합의를 도출했는데 이를 다시 뒤집는다면 이는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당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사회적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정당민주주의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과 합의의 정통성을 깨는 행위다.

이런 식으로 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협상 파트너인 새누리당은, 새정련의 누가 뭐라고 약속해도 이를 믿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또한 국회선진화법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간의 타협을 유도하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이렇듯 신뢰가 없는 상황에선 타협을 바라기 힘들어지고 결과적으로 국회선진화법은 오히려 법안 통과에 대한 장애물로서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뿐 아니다. 지난번 재보선에서 무참한 패배를 맛본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존 지도부를 물러나게 하고 이른바 '국민공감혁신위원회'라는 이름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영선 원내대표는 투쟁 일변도 정당으로부터의 탈바꿈을 선언했다. 그것이 지난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나온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약속은 무참히 깨진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이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합의를 뒤집는 이유는 뭘까.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협상 결과를 뒤집는 현상이 새누리당(한나라당)보다는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에 의해 더 자주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왜 새정련은 이렇듯 계속 합의를 뒤집을까.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이라는 '주인'이 있어서 협상 과정뿐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비교적 일사불란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반면 새정련은 주인이 없는 정당이다. 주인이 없다는 것을 민주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결과물들을 보면 오히려 반대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일사불란함은 없을지 몰라도, 그 일사불란함의 자리에 치열한 계파 간 투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한 행위를 뒤집은 것도, 결국은 계파 간의 경쟁에서 비롯됐다. 내년에 있을 당권 경쟁의 예고편이 벌써 나타나, 그 경쟁 때문에 민주적 절차성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박영선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은 어떤 이유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해 줬을까 하는 부분도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 지금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해야 하느냐 하는 점과 특검 임명에 관한 부분이다.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자는 의견은 몇 가지 문제점을 포함한다. 우리 국민 모두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마음을 백 번 천 번 이해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주는 부분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삼권분립에 관한 문제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주는 것이 삼권분립을 침해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법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린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는 "입법부에서 수사권까지 행사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입법부가 아닌 독립된 기구에서 수사권을 갖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과 무관하다…특검도 검찰과 독립해서 별도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독립기구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미국에서도 특검 등을 통해 얼마든지 하고 있는 것이다(이구현 중앙대 법학 교수)"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은 모두 특검과 진상조사위를 동일 선상에서 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특검에 대한 임명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한다. 입법부에서 특검을 결의했다 하더라도, 그 특검의 임명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하기 때문에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권한 침해는 일정 부분 해결될 수 있다. 반면 특검이 아닌 진상조사위의 수사권을 부여받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따라서 입법부의 단순한 합의 사항으로 수사권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따른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상설특검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수사권자를 임시로나마 만드는 것은 절차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뿐인가. 현대 법체계는 자력구제를 금지한다. 자력구제란 법체계에 의하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유가족이 포함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자력구제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다른 사고나 범죄로 자식을 잃은 부모 역시 자신들이 직접 수사해서 그 범죄자를 처벌하고 싶기는 마찬가지일 터다. 예를 들어 누군가 범죄에 희생됐다고 하자. 이는 국가의 치안에 관한 문제일 수 있고 또는 119 출동이 늦거나 수사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서일 수도 있다. 이때 피해자 유가족들 또한 수사권을 갖고 싶다 주장할 수 있다. 이번에 수사권이 허용된다면 다음번이나 다른 사건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것을 요구받는 선례가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국가의 행정체계와 사법체계는 무력화될 수 있다. 따라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주는 것이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특검 임명 절차에 관한 부분이다. 지난 6월부터 상설특검법이 실행되고 있다. 상설특검법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먼저 특검 수사 대상은 제한이 없다. 특검 발동 요건은 본회의 의결(재적 과반 출석, 출석 과반 찬성) 또는 법무부 장관이 특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규정했다. 특검 임명 절차는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협회장, 국회 추천 4인 등 모두 7인으로 이뤄진 특검후보추천위원회를 국회에 구성하고 특검추천위가 특검 후보 2인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인을 임명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지금 새정련은 특검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추천인원비율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결국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을 처음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차라리 법안에 합의를 해주지 말든지 하지, 지금 와서 예외를 주장하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공당의 제도적 마인드에 의구심을 들게 한다.

어쨌든 이번 '재협상 정국'으로 당분간 국회는 공전할 수밖에 없게 됐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백기투항을 할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다른 민생법안에 대해 쉽게 타협해 줄지도 의문이다. 세월호의 진상 조사와 진실 규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못할지 몰라도 우리 삶에 필요한 다른 법안들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들 기억할 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71호(08.20~08.26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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