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유승민 찍어내기? 정치권 개혁

2015. 7. 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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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내놓은 언급은 정치권 전체를 겨냥한 것일 수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29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굳은 표정을 보이는 유승민 원내대표.
정치권에는 투쟁의 계절이 왔다. 지금의 때 이른 더위처럼, 정치권 근처에만 가면 열사병에 걸릴 정도로 치열하고 뜨거운 권력 투쟁의 계절이 왔다는 말이다. 야당의 경우 사무총장 인선을 두고 친노와 비노 간 싸움이 절정에 이르고 있으며, 여당은 친박과 비박 간 갈등이 ‘유승민’이라는 고유명사를 두고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금 여당을 휘감고 있는 갈등은 박근혜 대통령이 개정 국회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 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선거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도 높아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분석해 보자. 얼핏 보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콕’ 찍어서 얘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박 대통령 언급을 전반적으로 읽어보면, 유승민 원내대표만을 찍어서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언급 초반에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정치사를 보면 개인적인 보신주의와 당리당략과 끊임없는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부정부패의 원인 제공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이 살아남기 위한 정치를 거두고 국민을 위해 살고 노력하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그 상생의 정치에 국민들을 이용하고 현혹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이 저에게 준 권한과 의무를 국가를 바로 세우고 국민을 위한 길에만 쓸 것입니다.”

이 언급을 보면, 한마디로 정치권 전반에 관해 박 대통령이 갖고 있던 생각을 ‘폭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유승민 원내대표도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고, 대통령이 갖고 있었던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불만도 언급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갖고 있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생각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생각의 일부분이라고 할 때, 정치권 반응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은 지금 정치권의 문제가 ‘부정부패’에서 비롯된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정을 통한 정치권 개혁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 모른다는 추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표현은 단순히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정치권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표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만을 찍어서 사퇴시킨다는 것이 당장은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일단 유승민 원내대표를 ‘인위적’으로 사퇴시키는 방법으로 첫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의원총회를 열어 투표로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임을 의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소한 외견상으로 볼 때, 친박은 소수고 비박이 다수다. 더구나 과거 새누리당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할 때의 경험이나 당대표 경선 때를 생각해보면, 설사 의원총회를 연다고 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만일 의총을 소집했지만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신임으로 결론 날 경우, 청와대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래서 의총에 의한 사퇴 유도는 쉽지 않은 수단이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은 최고위원 중 친박에 속하는 최고위원들이 집단 사퇴해서, 지도부를 와해시키는 방식이다. 이 방식도 문제는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최고위원들이 집단 사퇴해버리면 비상대책위가 일단 가동되는데, 이렇게 되면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원내대표를 그만두게 한다는 명분으로 사퇴하는 것이 오히려 유승민 원내대표의 위상을 강화시켜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정치권 전반을 향하고 있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은 정치권 개혁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이럴 경우 유승민 원내대표뿐 아니라 김무성 대표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이 여권 전반에 대해, 더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김무성 대표 역시 자리를 보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김무성 대표의 최근 언급을 보면, 유승민 구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김무성 대표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보호한 이유가 자신에게 향할지 모르는 화살을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신 맞아주기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계속 보호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입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정치 권력은 칼자루를 쥘 수 있고, 반대로 지금의 정치권은 부패에 상당 부분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비박과 친박의 숫자 비교는 무의미할 수 있다. 어쨌든 현재 박 대통령의 의중은 정치권 전반의 개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지금 야당의 행동은 정말 희한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메르스 정국 때 한 번 더 기회를 잃었다. 문재인 대표는 보이지 않고, 박원순 시장과 김무성 대표만 보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했다. 이런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선 거부권 행사는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이 권한은 지금까지 73번 사용됐다. 물론 문재인 대표 역시 성명에서 이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야당은 국회의원 211명이 찬성한 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는데, 그럼 언제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것인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상은 전부 국회를 통과한 법이다.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는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의원들이 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모든 거부권은 다수 의원이 찬성해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을 대상으로 행사되는 것인데, 왜 유독 이번만은 211명이라는 숫자가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뿐 아니라 “거부권 행사를 할 때는 예의 바르고 정중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은 정치권을 비판하면 안 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정치권은 대통령을 비판할 자유가 있지만 대통령은 정치권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지 ‘그것이 알고 싶다’.

이런 ‘궁금한’ 점 외에 개정 국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갖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민 입장에선 메르스는 ‘내 자신’의 문제지만, 개정 국회법이 위헌 소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갖고 국회를 보이콧하고 있었으니 정당 지지율이 올라갈 리 없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물론 늦게나마 다행스럽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전략적 오류만을 반복하면 국민들을 더욱 짜증 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아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어쨌든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정치권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 만일 대통령이 그런 의중을 갖고 있다면, 유승민 원내대표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모두 긴장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정부패와 무관한 정치인도 있겠고 그래서 이들의 경우는 그리 긴장하거나 떨 필요는 없겠지만, 만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이 있다면 분명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이미 정치권의 개혁은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15호 (2015.07.08~07.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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