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11월 30일] 감동 없는 우리 대선

한국일보

모든 선거판은 말싸움 판이다. 말싸움은 이름에서 시작된다. 1970년대에 경찰관 출신 박병배 씨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상대 당은 박씨를 '박살 났다 박병배!'라고 불렀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박실 씨는 선거 때 '박해 받은 실력자'라고 이름을 알렸다. 이름을 이용한 홍보나 비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반대세력은 박근혜가 '나그네'가 될 거라고 말한다. 또 나라를 보수ㆍ독재 시절로 되돌릴 것이라며 '빠꾸네'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문재인 후보를 빨갱이도 아닌 '빨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더하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문재인을 '문죄인'이라고 쓴다. 또 1주일을 '월화수목김정일'이라고 표기한 문죄인 내복까지 인터넷에 올렸다

안철수가 사퇴한 이후에는 "'안'이 안 보인다고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문'을 열면 그 '안'에 더 크고 넓은 세상이 펼쳐집니다."라는 말을 쓴 트위터리안이 있다. 안철수가 이미 건너온 다리에 불을 질렀다고 하자 '안철수'는 원래 절대 철수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좋아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름장난은 재미있고 기발하기도 하지만, 정작 후보들의 말솜씨는 어떤가? 한 원로 언론인은 최근 어떤 글에서 세 후보(안철수 포함) 모두 어쩌면 그렇게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연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의 두 남성 후보, 초등학교 저학년 담당 여교사가 교과서를 읽는 듯한 여성 후보, 그들은 단조로운 연설로 유권자들의 감동을 사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사퇴 회견도 감동적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지만, 그 내용에 어울릴 만한 정도의 극적 긴장과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사퇴가 일정한 격식을 갖춘 단일화의 한 과정이 아니라 정치에 갓 입문한 사람의 일방적 철수선언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목소리와 어조, 입 모양부터가 대중연설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최근에 끝난 미국 대선을 떠올리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롬니 후보는 멋진 웅변 대결로 유권자들을 흥분시켰다. 특히 오바마의 랩 송과도 같은 힘찬 연설은 그가 어떻게 매력 있는 정치인이 됐는지 알게 한다. 요즘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토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 명쾌한 화법과 독특한 제스처로 유권자들을 끌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히틀러의 연설하는 모습을 영화에서 보고 전율을 느낀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타계 이틀 전인 1956년 5월 3일 한강 백사장에서 사자후를 토한 해공 신익희의 연설이 명연설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은 과거와 같은 현하웅변(懸河雄辯)이 대세를 좌우하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떠나 연설은 청중을 사로잡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연사는 기술과 연습이 필요하다. 타고난 목소리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무례이며 경시행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가끔 어법이 안 맞거나 맞춤법이 틀리는 엉뚱한 휘호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대중연설과 휘호는 모두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서 적확한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후보들과 그 캠프 참여자들은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한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자 새누리당은 놀라면서도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철수의 정치쇄신 공약을 흡수하겠다고 하는데, 사퇴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좀 어른스럽게 통 큰 논평을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런 점은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이다. 통합진보당의 행태야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웅변도, 감동도 없고 상대를 비난하는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과거나 계속 들추는 대선 판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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