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제 편지를 받으셨는지요?"

조선일보

편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될 때도 있었다. "제 엽서가 잘 전해질지 알지도 못한 채 무턱대고 씁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카뮈-그르니에 서한집(1932~ 1960)'을 읽는다면, 우리는 '쯧쯧, 저런 안타까운 시절도 있었구나' 할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산문집 '섬'으로 국내에 알려진 장 그르니에가 주고받았던 편지 모음이다. 카뮈는 마흔넷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3년 뒤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르니에는 카뮈의 고교 시절 스승이었다.

↑ [조선일보]최보식 선임기자

당시 이들이 서로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필요했다. 전란 통에 이리저리 옮겨다닐 때는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막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손에 닿기까지 멀리 돌아온 편지였습니다'라고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우리는 손가락만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논쟁을 벌이고, 연애를 하고, 점심 먹을 식당 정보도 찾아낸다. 세상 소식에는 모르는 것이 없어졌다. "제 편지를 받으셨는지요? 선생님의 소식이 궁금합니다"라고 애타게 묻던 카뮈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는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정보 독점으로 밥벌이하던 시대는 벌써 무너졌다. 사건 배후에 감춰진 '모종의 음모'도 금방 알아내고 전파된다. 어떤 자리에서 내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정말 언론인 맞으세요?" 소릴 들은 적도 있다. 옛날에는 세상 소식이 며칠 끊겨도 별 탈 없었는데, 요즘 살아가려면 이렇게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해졌다. 시시콜콜한 연예인 가십을 놓쳐도 삶의 한쪽 기둥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됐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소식과 근거 없는 낭설, 타인의 신상정보, 막말과 독설의 수집에 유독 집착하는 부류도 생겨났다.

이런 정보의 풍요(豊饒)라면 카뮈의 시대보다 우리가 지식과 이성에서 전진해야 옳다. 27세의 카뮈는 이런 편지를 썼다.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지하철로 출근하니, 삶의 가치에 고민하던 카뮈 또래의 나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직장인은 고스톱에, 여대생은 단조로운 벽돌깨기 게임에, 또 술이 덜 깬 직장인은 어젯밤 놓친 예능 프로에 열중했다. 마치 전염처럼 한 명 예외도 없었다. 어떤 삶을 살다 가야 하는지를 요즘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인기 있는 학자나 작가들도 대부분 트윗을 날리며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만 바쁘다. 거기에 쏟는 시간과 열정으로 세상을 좀 더 깊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잡담만 오갈 뿐 사상과 철학을 말하는 이들은 사라졌다. 본질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탐색은 부질없는 일처럼 됐다.

패스트푸드가 편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몸에 꼭 이로운 것은 아니다. 정신의 양식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손쉽게 주울 수 있는 정보와 유희(遊戱)만으로는 결코 인간을 균형 있게 성숙시키지 못한다. 편한 맛에 중독되면, 매스컴에서 퍼뜨려놓은 대로 우르르 쫓아가고 반응할 뿐이다. 허위의 말일수록 더 화사하다. 내용이 없는 언어일수록 더 선동적이다. 금세 우리 눈을 현혹하고 입속에 침이 고이도록 한다.

카뮈는 22세 때 공산당 입당(入黨)을 제안받고 편지를 썼다. '제게는 인간을 괴롭히는 불행과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명철한 의식을 유지할 것이며 절대 맹목적이 돼 넘어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카뮈 때보다 지금이 더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맹목적이거나 속기 쉬운 대상이 된다. 가령 대선 후보마다 자신을 뽑아야 '세상이 바뀐다'고 하지만, 이는 후보나 그 주변에 들러붙은 '파리 떼'의 위세만 바뀔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뀐 적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는 세금은 늘고 수입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것만 예정돼 있을 것이다.

진정 세상이 바뀌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우리 개인들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자신의 휩쓸리는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젊어서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고,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도 참아내면서 말이다. 21세의 애송이 카뮈도 '제 자존심은 대부분의 경우 속 빈 허영이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명철하게 판단해보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한낱 매스컴 스타를 '메시아'인 양 맹목적인 추종을 반복하면, 조작된 이미지에서 제대로 본질을 보지 못하면, 허위와 진실을 구분해내는 힘이 부족하면, 우리에게는 늘 그런 수준의 세상만 주어질 것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