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400만명 의료정보 유출에도 손놓은 정부

2015. 7. 2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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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4400만명의 민감한 개인 의료정보 약 43억건이 무더기로 유출돼 불법 거래된 사실이 지난 23일 정부합동수사단 발표로 밝혀져 충격을 안겨줬다. 의료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가 7500여 병원으로부터 약 7억2000만 건의 개인의료정보를 불법 수집했고, 약 3년에 걸쳐 4억3000만 건의 환자 진료와 처방 정보를 외국계 의료정보 회사에 아무렇지 않게 팔아넘겨 국민들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개인 정보가 유출됐는데도, 4400만 국민은 자신의 의료 정보가 노출됐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외부로 유출될 경우 개인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는 병명이나 수술·복약 기록 등 매우 민감한 정보가 새 나갔는데도, 국민은 내 정보가 유출됐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유출 여부를 모르니 피해 구제를 호소할 방법도 없다. 국민은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데도 정부 당국은 개인 의료정보 관리 책임주체인 병원을 비롯해 약국 등 의료기관을 감싸며, 국민 개인정보보호와 피해 구제에는 '나 몰라라'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신용정보법 등 현행 정보보호 관련 법률에 따르면 개인정보 관리책임주체는 정보유출 발생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정보 주체자에 유출 사실을 통보하는 '유출 사실 통지 의무'가 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 제 34조는 개인정보가 유출 됐을 때 정보처리자(병원 및 약국)는 정보주체(환자)에 유출 개인정보 항목과 유출 시점, 경위, 유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지체 없이 통지하고 피해 구제절차를 안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의료정보 유출 사태에서는 병원이나 약국 그 어느 곳에서도 환자 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피해자에 알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국민에 개인정보 유출 여부 통지와 피해구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 당국의 어처구니 없는 유권해석 때문이다. 의료정보 유출 사건의 소관 부처인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는 개인정보 유출 통지 의무가 있는 병원이나 약국에 이를 면제해줬다. 행자부 측은 개인의료정보의 2차 유출이 없었고, 유출 사실 통지를 하기 위한 조회시스템을 구축하는 부분까지 검토했으나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아 통지 의무를 면제하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인의료정보를 불법 수집해 유출한 의료 소프트웨어 업체(지누스)가 외부 해킹 등으로 불가피하게 정보를 누출한 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정보를 외부에 노출했기 때문에 현행 법상 이 업체에 유출 사실 통지 의무를 부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억지 주장이고, 의료계 감싸기에 불과한 것이다. 개인 의료정보 처리와 관리 책임은이 소프트웨어 업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과 약국에 있다. 따라서 병원과 약국 등은 불가피하게 정보 유출을 당했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에 유출 사실을 통지하고, 피해구제에 나서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더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은 정부 부처의 태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국민) 피해자가 정보 유출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국민 권익과 피해 구제에 앞장 서야 할 정부 공무원이 국민 개인정보가 유출되든지 말든지 '나는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법조 전문가들조차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개인의료정보가 어떻게 유출됐는지 알고자 하는 피해자가 있다면 마땅히 의료기관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인 국민 피해 대책 마련에 지금이라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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