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저급한 입법에 합헌 면죄부 준 헌법재판소

2016. 7. 2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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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전부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앞으로도 논란을 부를 것이다. 법리로나 실제 법 적용에서 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출발부터 잘못된 법이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핵심인 이해충돌방지 부분이 삭제됐다. 또 국회의원이 공익적인 목적을 내세워 제3자의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제재 대상에서 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신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 민간인이 엉뚱하게 들어갔고 지식의 시장가격이 무시되는 등의 법률이 되고 말았는데 헌재가 이를 합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 법 제5조는 14가지 부정청탁 금지유형을 나열하면서 교직원에 대해서는 그나마 입학, 성적, 수행평가 등의 업무관련성을 규정하고 있지만 언론인에 대해선 단 한 구절의 업무관련 조항도 적시하지 않고 있다. 배우자 잘못까지 고발토록 해 과잉입법이요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묻고 있다는 면에서 위헌적 요소도 적지 않다. 게다가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시민단체는 제외해 형평성도 찾기 어렵다. 여론 눈치를 본다는 지적을 받아오던 헌재가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야 무성의한 결정을 내놓은 것이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몰라서, 그리고 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 옅어서 이런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들여다볼수록 어처구니없는 규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벌 대상이 되는 밥값을 국가가 정한다는 것도 코미디요 교수들의 강의료에 정부가 상한선을 정하는 것은 무지가 지배하는 사회 그 자체다. 국회의원들이 비틀어놓은 법률 조항들에 합헌 면죄부를 준 것은 국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굴복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배우자를 고발토록 하는 법이 필요할 정도로 사회악이 창궐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가 짓밟히고, 투명한 시장경쟁 질서가 부정되며, 정치권력이 날로 커지고, 국가행정의 무소불위가 끝을 모르는, 그래서 공직자들의 손끝에 국민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후진적 사회구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덜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저급한 법률이 합헌이 된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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