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들이 "스펙 안보겠다" 선언하라

매일경제

20대 고용률이 57.0%로 43개월 만에 최저치다. 특히 대졸자들이 몰려 있는 25~29세 체감 실업률은 20%가 넘는다는 얘기도 있으니 그리스와 스페인 사정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대졸자들은 노동시장 진입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스펙 쌓기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이 취업 스펙을 쌓는 데 투입하는 비용은 1인당 평균 4269만원이라고 한다. 외국연수 한 번은 기본이다. 취업준비생 10명 중 4명은 회당 20만원 안팎을 주고 취업과외까지 받는다고 한다. 구직사이트에는 이력서 한 줄 채우느라 3000만원 들여 어학연수 다녀왔다는 한탄이 줄을 잇는다. 인턴수료증, 토익성적표, 어학연수 등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1~2년씩 휴학하는 대학생도 연간 100만명에 달한다.

경기 침체, 성장 둔화, 더 나은 일자리에 대한 경쟁 탓도 있지만 대기업 채용 방식이 무한 스펙 경쟁을 더 부추기는 측면이 없지 않다. 입사지원서에 영어성적, 자격증, 인턴 경력, 수상 경험, 외국 경험, 봉사활동 등 각종 스펙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거의 모든 입사 지원자들이 천편일률적인 스펙을 내놓는 바람에 차별성을 가리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기업 안에서는 화려한 스펙만 보고 뽑았다가 조직 부적응, 조기 퇴사 등 각종 문제들이 많아졌다는 자성론이 나온다. 필수 스펙 중 하나인 인턴십은 6개월 동안 월 100만원 안팎인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온갖 잡일에 내몰리는 '최악의 비정규직'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인턴십을 통한 실무 적응 여부를 채용 시 판단 기준으로 삼는 대기업은 거의 없다.

업무에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도전정신을 갖춘 로열티 있는 인재는 스펙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기업들은 이미 실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원서에 '교환학생 경험을 적으시오' '인턴과 자격증 취득을 써 넣으시오'라는 형식적인 요구에 학생과 부모는 등골이 휘어져라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뽑아줄 것도 아니면서 기업이 개구리에게 돌 던지듯 스펙한 줄 요구하면 가계는 파탄을 무릅쓰고 투자한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대기업들이 불필요한 스펙은 아예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라. 대선 후보들도 대학생과 부모들 고통을 헤아려 좀 더 강하게 독촉하라. 대기업들은 스펙보다 스킬과 잠재능력을 뽑는 채용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스펙이 좋아야만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고 홀리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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