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서 증거 사라질지 모르는데 검찰은 왜 손 놓고 있나

이충재 2016. 10. 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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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8일에도 미르ㆍK스포츠재단 관계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흘 연속 진행된 압수수색 대상만 26곳으로, 이번 사건 연루자들과 관련된 장소가 두루 망라됐다. 그제는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특수부 등 검사 10여명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검찰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늑장수사와 뒷북 대응에 불신만 커지고 있다.

최순실씨 의혹 수사에서 검찰은 줄곧 한 발짝씩 늦은 행보를 보여 왔다. 고발 한참 뒤에 이뤄진 사건 배당과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전담시킨 것, 고작 검사 3명에 수사를 맡긴 것 등이 그랬다. 여론의 비판이 제기되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대응에 나섰다. 무더기 압수수색도 증거인멸 관련 보도가 쏟아진 데 따른 것이고, 특별수사본부는 정치권의 특별검사 도입이 가시화하자 나온 조치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최씨 관련 의혹 수사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두 재단 설립 및 모금 과정의 청와대나 최씨 개입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연설문을 비롯한 청와대 비밀문건 유출의 전모를 밝혀내는 것이다. 문제는 검찰의 요란한 수사가 재단 비리 규명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 분노는 외교ㆍ안보ㆍ인사 등 청와대의 거의 모든 업무자료가 최씨에게 유출될 만큼 국기문란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마음이라면, 청와대부터 압수수색을 했어야 맞다. 이미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문건 전달자로 지목돼 있고, 태블릿 PC 명의자는 뉴미디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외곽수사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이 청와대에 남아 있는 증거자료가 훼손될 우려가 그만큼 크다. 검찰은 청와대 압수수색에 대해 “수사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하고 있다. 말로는 “성역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힘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방증이다.

통상적 수사 관행에 어긋나는 검찰의 행태를 보면 특검 출범 때까지 적당히 시간만 끌자는 심산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본부장을 비롯해 검찰 고위간부들이 올해 말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권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은 검찰로서도 권력을 의식하기보다 국민 신뢰를 얻는 쪽이 유리하다. 검찰이 이번에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면 정말 앞날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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