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패 근절이 사익 침해보다 시급하다는 헌재 결정

한국일보 입력 2016. 7.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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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쟁점 필요성ㆍ정당성 다 인정

정치권은 여전히 법 개정 움직임

시행 후 문제점 있으면 보완해야

헌법재판소가 공직자의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금지한 이른바 ‘김영란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대한변협과 한국기자협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4개 쟁점 모두 합헌 판단했다. 이로써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김영란법은 제정안 발표 4년 만인 9월 28일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의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자가 4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앞으로 국민 생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공직자와 언론사ㆍ사립학교ㆍ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직무를 수행하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ㆍ연 300만원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이 공직자 외에 민간 영역까지 광범위하다 보니 ‘과잉 입법’ 논란과 일상생활에서의 ‘도덕 사찰’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 자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어제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림으로써 모든 논란에 종지부가 찍혔다.

헌재는 가장 큰 쟁점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의 대상 포함에 대해 정당하다고 봤다. 헌재는 7대 2의 합헌 결정으로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파급효과가 커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일부 주장대로 국가 권력에 의해 청탁금지법이 남용될 경우 언론과 사학의 자유가 일시 위축될 소지는 있지만 이 법이 추구하는 공익보다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논란이 된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과 관련, 재판부는 “관련 조항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 본인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연좌제나 과잉금지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부정청탁과 사회상규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청구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청탁이라는 용어는 이미 많은 판례가 축적됐을 만큼 일반적이고, 입법과정에서 14개 항목으로 구체화해 위헌 요소가 없다”고 봤고, 금품 상한액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데 대해서도 “법률에 일률적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어 문제가 안 된다”고 밝혔다.

헌재가 4개 쟁점 모두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저변에는 이 법이 추구하는 공익적 가치와 목적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청렴도를 높이고 부패를 줄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관행을 방치할 수 없다”는 언급에서 그런 뜻이 읽힌다.

공은 이제 입법부와 행정부로 넘어갔다. 정부는 예정대로 시행할 방침이어서 마지막 관건은 국회다. 일단 여야는 한목소리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후속 입법 추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축수산물 등의 소비 위축을 이유로 한 법 개정 움직임이 여전한 셈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국내 과수농가와 한우축산업자, 어민들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우려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공직자 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만든 법을 시행하기도 전에 완화하는 건 명분이 약하다. 농어민의 어려움은 다른 정책적 수단으로 보완해야 하고, 부패 감소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다소의 부작용은 감수하라는 헌재 결정의 취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입법 보완을 검토하려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빠진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의 자녀와 친척 취업 청탁 등을 막기 위한 ‘이해충돌방지 조항’부터 되살리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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