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사 성추행 난무한 고교, 어떻게 이런 학교가

한국일보 입력 2015. 7. 31. 20:10 수정 2015. 7. 31. 2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쉬쉬해온 사이 한 고등학교가 성추행으로 온통 만신창이가 됐다. 한국일보 보도(30일자 27면)로 알려진 서울 서대문구 A고교 얘기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일부터 시작한 특별감사과정에서 드러난 이 학교의 성추행ㆍ폭력 상황은 이게 과연 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개탄스럽다. 드러난 내용만 해도 남자 교사 5명이 지난 1년 반 동안 최소 8명의 여교사와 여학생 130여명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돼 있다. 더욱 놀라운 건 교장도 추문에 연루돼 사건을 덮어두려고 시도한 흔적이 있다는 점이다.

시교육청 감사는 상습 성추행을 당한 여학생을 상담한 여교사가 최근 민원을 제기해 시작됐지만, 여교사와 여학생에 대한 이 학교 교사들의 성추행은 그 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B교사는 과학실 등에서 여학생들의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맨 살과 가슴 등을 만지려고까지 했고, 학교 성폭력고충처리위원인 C교사는 여학생 2명 이상을 지난 1년여 간 상습 성추행 해왔다. D교사는 여학생들을 '황진이'나 '춘향이' 같은 기생 별명으로 부르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연예인과 성관계 하는 상상을 들려주는 묘한 취미를 보였다. E교사는 회식 중에 저항하는 여교사의 옷을 찢기까지 하며 몸을 더듬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는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덮기에 급급했다. 이미 지난해 2월 회식 중 성추행을 당한 여교사의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가해 교사는 학교의 방조 하에 1년간 연가와 병가, 휴직을 이어가며 버티다 올해 초 다른 학교로 전근해 버젓이 수업을 맡고 있다. 지난 2월엔 한 학부모가 직접 경찰에 자녀의 성범죄 피해사실을 고발했지만, 학교는 시교육청 등에 보고조차 안 했다. 그제는 이 학교 교장 자신이 성희롱 등을 저질렀다는 진술에 따라 시교육청 감사 대상 5인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나, 이 학교의 납득 못할 분위기가 결국 교장으로부터 비롯된 것 아니냐는 추정을 낳고 있다.

성폭행이나 추행은 가해자가 쉽게 자각하기 어려운 범죄 중 하나다. 가해자로서는 친밀감의 표현이거나 습관 정도로 여겨 오히려 범죄로 몰리는 상황조차 억울하기 십상이다. 통상 학교나 교육청이 사실 파악과 징계에 신중을 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A고교는 그런 유보적인 대응이 상황을 얼마나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만하다. 교사들의 문제에 대한 교장의 묵인과 은폐, 현장 상황에 대한 시교육청의 무지와 관망이 이제 학교 전체를 황폐화시키는 지경까지 몰아갔다. 엄정한 조사와 일벌백계의 관용 없는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