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 성범죄 심각한데 인식과 대책은 코미디 수준

한국일보 2015. 1. 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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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대상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고 있지만 대책이 겉돌고 있다. 최근 현역 여단장이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사건이 터지자 육군은 강도 높은 대응책을 검토 중이지만 전형적인 보여주기 식에 머물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이자 병역문화혁신특위 위원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위원은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다. 군 수뇌부와 새누리당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인식으로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군에 만연한 성범죄를 근절하지 못하면 대한민국 군대가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육군이 검토 중인 '성 군기 개선을 위한 행동수칙'을 보면 인식의 안이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책 가운데는 '여군과는 한 손으로만 악수하라' '남녀 군인 단둘이 차량을 타지 마라'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근무 여건상 남녀 군인이 둘이 이동해야 할 상황이 적지 않다. 이 수칙대로라면 앞으로 여군은 걸어서만 다녀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올 법 하다. 이성과 한 손으로만 악수하라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지휘관이 부하 여군을 격려할 때도 한 손으로만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군은 지난해 10월 여군 대상 성범죄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자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 일환으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전군의 여군을 대상으로 성범죄 피해실태를 조사했으나 실제 신고는 3건에 불과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상정보와 녹취, 이메일, 증인 등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니 곧이곧대로 신고할 리 만무하다. 이런 식의 이벤트성 조치와 땜질처방으로 일관하니 성범죄 척결이 요원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여단장의 여군 성폭행 사건에 "여단장이 외박을 나가지 않아 성(性)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한심한 발언을 했다. 송 의원은 해당 여군 하사를 '하사 아가씨'로 표현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낸 병역문화혁신특위 위원이다. 병역문화 혁신에 앞장서야 할 사람의 인식이 이 정도이니 제대로 된 대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군내 성범죄에 대해 "안보를 좀먹는 이적행위인 만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군 수뇌부의 지시가 부하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수뇌부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강이 문란한 군 조직을 개혁할 능력이 없으면 책임자들이 자리를 내놓는 것이 도리다. 군내 성범죄는 더 이상 군에만 맡겨둘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는 물론 새누리당은 군을 다시 세운다는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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