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겨울공화국'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입력 2015. 12. 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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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가 12월5일 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주최 쪽의 약속에도 기어이 금지통고를 하더니, 참가자는 모두 처벌하겠다는 등 협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내 말 좀 들어달라’는 국민을 향해 주먹부터 내보이는 꼴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1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단체들이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말에 또다시 대규모 집회 개최를 예고하고 있다”며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정부의 불허 방침’이란 표현부터가 잘못됐다. 헌법은 정부가 집회·시위를 허가하고 말고 할 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집회·시위는 주권자의 권리다. 정부는 심각한 폭력사태 등이 벌어질 게 명백한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금지 조처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정부가 금지했다고 무조건 집회를 못 여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2011년 ‘사전 금지된 집회라 하더라도 실제 이루어진 집회가 평화롭게 개최되는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 해산·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더 가관이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1월30일 “미신고 집회에 모이면 다 불법”이라며 “채증을 통해 전원 검거하겠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를 아예 무시하는 발언으로, 법을 호도해 국민을 협박한 것이다. 집회를 금지하려면 ‘폭력사태로 번질 게 명백하다’는 근거를 대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광화문광장을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간’으로 규정한 서울시 조례를 집회 금지의 근거로 들먹이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지자체 조례로써 제한하겠다니 법치의 기본도 모르는 무지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정부는 마치 예지력이라도 지녔다는 듯 5일 집회가 폭력으로 얼룩질 것이라고 상상 속에서 단정한 뒤 이를 근거로 집회를 봉쇄하겠다고 나선다. 이는 헌법이 금지한 자의적인 집회 허가제와 같다. 이러한 ‘사전 금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완벽한 억압 방식으로 꼽힌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판례를 통해 이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과거 유신독재 시절에는 결혼식을 위장해 집회를 열 정도로 집회·시위가 사전 봉쇄됐다. 이어진 군사정권에서도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시위는 모두 불법으로 낙인찍혀 혹독하게 진압당했다. 정부는 역사를 그 시대로 돌이키고자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경찰은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체포조 투입 등 강경 진압 방침을 흘려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상황만으로도 그 시대의 공포는 이미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다. 경찰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조계사 진입을 검토했다는 말도 들리는 가운데, 조계사 신도회 일부 인사들이 한 위원장을 강제로 끌어내려 하면서 한 위원장의 옷이 찢기고 벗겨지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암울한 공기가 사방에서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가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우려를 표했는데, 이후 정부의 퇴행은 더 가속화하고 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외국 정상을 만나면서 박 대통령은 정녕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도 않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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