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중소기업 부당거래 생태계부터 고쳐야

중앙일보

대기업이 발표하는 경영실적 중 '원가·비용 절감'은 납품가 후려치기 등 중소협력업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엔 롯데의 정보기술(IT) 계열사가 협력업체의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되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까지 훔쳐서 중소기업을 도태시킨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수사 결과 밝혀진 내용은 이렇다. 롯데 산하에서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을 하는 롯데PSNET는 2년간 ATM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A사에 기술을 넘기라고 종용했으나 거부당하자 파견 직원의 노트북에서 소스코드(원천기술)를 몰래 빼내 프로그램을 훔쳤다. 그리고 이를 변형시켜 쓰려다가 에러가 나자 다음 번 입찰에서 A사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협력업체의 기술을 가로채거나 인력을 스카우트해 비밀을 빼가는 사례는 꾸준하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9~2011년 대기업에 기술 유출 피해를 봤다는 중소업체는 조사대상의 12.5%에 달했다. 대기업의 횡포는 이뿐 아니다. 직접 돈을 뜯어내는 '삥뜯기'까지 성행한다. 백화점들이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입점 중소업체들에 부담시키고, 유명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주들에게 각종 판촉물을 강매하고 광고비 등을 갹출하는 등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기도 했다.

 중소업체들은 적발된 것보다 숨어 있는 사례가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에 일감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중소업체들은 밉보이지 않기 위해 부당거래도 받아들이고, 심지어 담당자에게 뇌물 형태의 금품을 제공하면서도 쉬쉬한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의 부당거래가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행정조치로 끝나는 등 처벌이 가벼워 이런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이를 '대기업-중소기업 생태계'라고 치부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자체 쇄신에 역점을 두는 '경제민주화' 같은 거대담론에 대해 냉소적이다. 이렇게 고착화된 기업 생태계부터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상생도 동반성장도 없다는 것이 업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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