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경쟁력 추락, 답 알면서 못 푸는 나라의 운명

2016. 9. 29.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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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민간 싱크탱크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올해 138개국 중 26위였다. 1996년 WEF가 같은 기준의 평가를 시작한 이후 최저 순위다. 경제의 효율성과 미래 잠재력을 수치화한 이 순위에서 한국은 2007년 11위까지 올라갔다가 계속 하락해 2014년 이후 3년 연속 26위를 기록했다. 장기 침체를 겪으며 2000년대 초 21위까지 내려갔던 일본이 올해 8위로 도약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쟁력 순위의 추락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모든 것이 쪼그라들고 위축되고 악화되는 '복합 침체'의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 2%대 저성장에다 수출은 14개월째 줄고 있으며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다른 선진국이 3~5년 만에 돌파한 '소득 2만달러의 함정'에 우리는 9년째 갇혀 있다. 늘어나는 것은 가계 빚과 국가 부채, 그리고 국민 나이(고령화)뿐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과거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한국 경제 특유의 역동성과 활력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이나마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몇몇 글로벌 플레이어의 활약에 따른 착시(錯視)다. 새롭게 성장을 견인할 차세대 기업군이 탄생하긴커녕 조선·해운처럼 한국을 대표하던 주력 산업이 속속 몰락 위기에 처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구조적 침체에 이미 들어섰다는 경고가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산업과 국가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 개혁을 통해 효율성과 활력을 되찾는 것이다. 노후 산업과 부실 좀비 기업을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하며,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마음껏 뛰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공공·노동·금융·교육 같은 국가의 기본 운영 체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제도 전반을 손보는 일도 시급하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 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점이다. 정답을 뻔히 아는데도 이를 실행해야 할 정부와 정치 리더십은 무능력과 무기력 증세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많은 선제적 정책들은 실종된 지 오래다. 한진해운 사태 때 눈앞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국익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유능·혜안·비전과 같은 가치를 정부에 기대한다는 것이 난센스처럼 돼버렸는데 그런 정부가 국회 탓, 야당 탓만 한다. 기업인들은 이 정부가 하는 일이 검찰 수사와 세무 조사뿐인 것 같다는 한탄까지 하고 있다.

야당은 노조 같은 극렬 지지 세력의 포로가 돼 이들이 저항하는 개혁은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성공하면 야당이 집권할 수 없다는 논리도 횡행한다. 정파적 이익에 함몰돼 나라 전체를 보는 관점을 상실한 지 오래다. 기득권 노조들의 무책임과 탐욕은 도를 넘었다. 사드 문제에서 보듯 나라에 필요해도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될 것 같으면 반대하는 현상도 만연해 있다. 사회 각 부문이 자신의 '부분 이익'을 고집하면서 '전체 이익'을 갉아먹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 해결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사회 각 부문이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 쇠락해갈 것이다. 답을 몰라 헤맨다면 차라리 희망이 있다. 답을 알고도 풀지 못한다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외환 위기 때처럼 한번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는 얘기가 실감 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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