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사 자살 빚은 부장검사 해임, '지시에 복종' 원칙 불태워야

2016. 7. 28.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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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지난 5월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홍영 서울남부지검 검사의 상관 김모 부장검사를 해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자체 감찰을 통해 김 부장검사가 '장기 미제 사건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 검사에게 폭언하거나 술자리에서 질책하면서 손바닥으로 등을 때리기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김 부장검사는 법무부 근무 시절에도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보고했다는 이유로 부하들에게 폭언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보고서를 구겨 바닥에 던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자살한 김 검사는 친구들에게 보낸 카톡에서 '매일 욕을 먹으니 자살 충동이 든다'고 썼다.

이런 문제는 인격적으로 수양이 덜 된 한 개인의 이상(異常) 행동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김 검사의 자살에 대해서도 '본인이 심약한 탓'이라고 보는 시각이 검찰 일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1년 대전지검이나 1993년 부산지검에서 있었던 검사 자살 사건도 상관의 인격적 모멸이 원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검찰은 '검찰총장→검사장→차장검사→부장검사→평검사'로 이어지는 엄격한 위계(位階) 문화가 이번 불상사의 바탕에 깔려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검찰에는 윗사람의 지시에 복종한다는 암묵적 분위기가 다른 어떤 조직보다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가 수사 효율 측면에서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상관과 선배의 판단이 옳을 수는 없다. 위가 아래를 틀어쥐는 전근대적 조직 문화가 막중한 검찰권 행사에 관한 개별 검사들의 창의적 발상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검찰이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 수사에 나설 때마다 각종 음모론이 돌곤 한다. 전국 검사 2000명이 검찰총장 한 명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검찰 수뇌부가 일선 검찰이 보고한 기업과 정치인들에 관한 각종 첩보와 정보를 캐비닛에 쌓아놓고 정치권 돌아가는 사정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수사 착수 시기와 범위를 조정하는 것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검찰의 이런 '기획 조정 수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과 조율(調律)해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 다수 국민의 상식이다.

검찰은 김 검사의 자살뿐 아니라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의 비위와 현직 진경준 검사장의 독직(瀆職) 사건으로 유례없는 위기에 부딪혀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검찰 내부로부터 조직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용기 있는 목소리 한마디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검사 동일체 원칙'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검찰의 무조건적인 상명하복(上命下服) 조직 문화는 이제 불태워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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