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英 EU 탈퇴, '反세계화' 물결 거세지면 한국 경제 질식할 것

2016. 6. 2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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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위, 유럽 2위 경제 대국인 영국이 23일 시행한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예상을 뒤집는 영국의 결정에 파운드·유로화가 폭락하고 각국 주가가 큰 폭 하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유럽·미국 전문가들은 '브렉시트(Britain+Exit)'가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이 2008년 금융 위기에 버금간다며 '유럽판 리먼 사태'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브렉시트가 안 그래도 부진한 우리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뜨릴 것이란 우려감도 커졌다.

영국의 EU 탈퇴는 세계경제의 통합, 즉 세계화 물결에 급제동이 걸렸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세계는 1980년대 이후 단일 시장으로 수렴하는 글로벌 경제권으로 진화해왔다. 개방과 자유화, 통합과 연결이 세계경제의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란 글로벌 낙관주의가 브렉시트를 계기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당분간 세계는 반(反)세계화(Anti-globalization)의 방향으로 기울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통합과 개방 일변도로 지난 40여년간 진행돼온 세계경제 흐름이 한숨 고르며 속도 조절을 하게 된 것이다. 영국 국민의 51.9%가 EU 탈퇴에 찬성한 것은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서 얻는 이득'보다 '이민자가 내 일자리를 빼앗을 불안감과 손실'이 더 크다는 체감 때문이었다. EU 참여를 통해 세계화 물결에 오르는 것보다 이민 통제를 선택해 영국의 국가 주권(主權)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영국에서 촉발된 '남느냐, 떠나느냐' 논란은 다른 회원국에 연쇄 파급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 프랑스의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과 네덜란드의 자유당(PVV)이 "우리도 EU 탈퇴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벌써부터 네덜란드·핀란드·그리스가 영국 다음의 탈퇴 멤버로 거론되고 있다. EU의 전신인 EEC(유럽경제공동체)가 1958년 태동한 이후 60년 가까이 결속을 다져온 유럽에 반(反)통합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전을 계기로 보호무역과 신(新)고립주의 현상이 또렷이 드러났다. 누구도 예상 못 한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부상은 미국민의 가치관이 '국제주의'에서 '미국 우선주의'로 중심 이동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현상'도, 영국의 브렉시트도 글로벌화의 혜택에서 소외돼 피해 의식을 갖게 된 일반 대중이 집단적으로 반기(反旗)를 든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 리더십이 대중의 반감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반(反)글로벌화 흐름이 더욱 확산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는 것이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표출된 고립주의 추세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어느 나라보다 글로벌 경제 체제의 혜택을 크게 누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역(逆)통합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당장 걱정되는 것이 전체 외국인 자금의 8%를 차지하는 영국계를 비롯, 외국인 투자 자금의 이탈 가능성이다. 금융·외환시장이 출렁이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는 미국·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 통화협정(SWAP)을 맺는 등 단단히 방파제를 쌓고 리스크를 관리할 비상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 수출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은 브렉시트로 유럽 경제 전체가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발 불황의 파고가 국내에 닥쳐올 것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필요하면 더 과감한 경기 부양 조치를 취하고 서비스업 육성 등 내수(內需) 확대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기업 구조조정과 노동·공공 개혁 등 경제 체질을 고치는 작업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앞으로 세계화 역류(逆流) 추세가 유럽·미국에서 확산되면 수출로 지탱해온 우리 경제는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각국이 보호주의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면 할수록 통화 절하(切下) 추세가 빨라지고, 저성장 속에서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심각해질 것이다. 바야흐로 이웃 나라가 무너져야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생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시작된 반세계화·고립주의 움직임이 앞으로 30년가량 지속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정부나 기업, 개인은 생존 전략을 새로 세워야 한다. 장기 저성장 시대의 경제는 허황된 모험보다 내실(內實)을 다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금 여기서 한번 판단을 그르치면 기업도, 나라도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비상한 각오가 절실하다.

[사설] '안보·경제 동시 위기' 정치권 단합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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