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줄거리조차 못 잡는 미세 먼지 대책, 벌써 정권 末 증상인가

2016. 6. 1. 03: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미세 먼지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지시했지만, 정책 선택을 놓고 부처 간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환경부는 경유에 붙는 세금을 올리자는 주장인 반면, 기획재정부는 경유차에 부과하는 환경개선부담금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노후 화력발전소 정비에 대해선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맞서 있다. 가까스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지만, 국민이 느끼는 사안의 시급성은 못 따라가고 있다.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정부가 어디서 얼마나 미세 먼지가 배출되는 건지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세 먼지를 줄이는 데 누가 얼마큼 비용을 감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다.

환경부는 중국발(發) 초미세 먼지의 영향이 50% 정도라고 봤다.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일 뿐이다. 경유차에서 대기로 직접 배출되는 초미세 먼지의 비중은 4%라는 조사도 있긴 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경유차의 초미세 먼지 오염 기여율을 대강 10~15% 정도라고 추측할 뿐이다. 화력발전소가 미세 먼지를 뿜어낸다는 데도 부처 간 의견이 다르다. 충남 지역엔 전국 석탄화력발전소(53기)의 절반 가까운 26기가 몰려 있다. 4~10월엔 수도권 초미세 먼지의 21~28%가 보령·당진·서천·태안 등 화력발전소 탓이라는 대기환경학회의 연구가 있다. 환경부가 이 자료를 들이밀어도 산업자원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조사 결과에 대한 견해가 제각각인 것이다.

전국 미세 먼지 측정소 506곳 가운데 성분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곳은 6곳에 불과하다. 미세 먼지의 배출원·배출량, 공기 중 농도와 그 흐름을 정확히 관측할 수 있는 측정망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현실이 이러니 부처 간에 서로 남 탓하며 목소리 큰 쪽이 이긴다는 식의 논쟁만 이어지고 있다.

국민 입장에선 부처 간 논쟁에서 누가 이기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든 빨리 깨끗한 공기를 마시게 해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유에 세금을 더 매기든 환경부과금을 매기든 경유차 운전자들의 부담은 똑같다.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된다는 식은 부처 이해를 앞세운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 이런 허망한 논란은 그만두고 정말 경유 가격 인상이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판단한 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영국 런던은 미세 먼지 배출량이 많은 경유 버스가 도심으로 들어오면 최대 1000파운드(약 174만원) 과태료를 물린다. 독일 베를린은 기준을 충족한 차량에만 도심 진입을 허용한다. 베이징도 출퇴근 시간 도심 진입 차량에 하루 20~50위안(3600~9040원)의 스모그 세금을 물릴 예정이다.

국민이 미세 먼지로 숨 막히는 고통을 겪고 있는데 부처 간 다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부는 당장 효과가 뚜렷한 노후 경유 차량 운행 규제, 노천 소각 억제, 도로·공사장 먼지 감축 같은 단기 대책부터 서둘러 시행해야 한다. 그런 다음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3년, 5년 뒤엔 하늘을 얼마나 맑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도 부처들이 계속 미적댄다면 '정권 말기(末期) 증상'이라는 말까지 들을 수 있다.

[사설] 20대 국회 개혁 '불체포特權 폐지' 하나에 달렸다

[사설] 운동장 우레탄 트랙서 납 검출, 불안해 아이 학교 보내겠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