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前職 대통령의 처신

2015. 1.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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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회고록 내용이 공개되자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권이 "자화자찬과 자기변명"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청와대와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 측은 회고록에 담긴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전 총리를 여당의 2012년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며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0일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세종시 문제를 정치공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는 것이 과연 국가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며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현(前·現) 정권이 충돌하는 듯한 모습이다. 국민이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장면이 또 한 번 벌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미국·중국 정상(頂上)과 나눈 민감한 외교 대화와 남북 비밀 접촉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가 어렵게 드러낸 북한에 대한 속내를 퇴임 2년도 채 안 된 시점에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과연 국익(國益)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외교가에선 앞으로 어떤 중국 지도자가 한국 측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려 하겠느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외교 문서나 대통령 기록물 공개를 최소 20년 이후로 규정한 것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이다.

남북 비선(&#65533線) 접촉에서 오간 대화 내용을 공개한 것 역시 앞으로 남북 관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은 "다른 나라 정상들도 퇴임 후 회고록에서 이 정도 대화록은 공개한다"며 "진짜 민감한 내용은 걸러냈다"고 했다.

회고록 출간 시기도 논란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너무 빠르다는 의견이 많다. 공교롭게 박 대통령이 지난해 말 비선 실세 의혹 이후 정치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나왔다. 야당은 야당대로 국회의 자원 외교 국정조사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본격적인 의혹으로 키울 태세다. 이 전 대통령이 자원 외교에 앞장섰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쏙 빼고서 한승수 전 총리의 책임 아래 이 일이 이뤄졌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책임 회피'라는 비난이 적지 않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5년간 국가를 이끌었던 대통령 처지에서 기록한 역사라는 측면이 가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논란은 대통령직을 둘러싼 풍토의 후진성과 연결돼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이나 특검, 국회의 조사 대상이 됐다. 국민적 존경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거의 없는 게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퇴임 대통령의 회고록 역시 자기 미화(美化)에 급급한 경우가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한 평가는 이런 불행한 전철(前轍)에서 벗어나 국민 다수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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