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브렉시트로 국제질서 격변, 정신 차려야 한다

2016. 6. 2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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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사상 최대 위기 직면국제금융시장 일대 혼란우리 경제 불확실성 커져

영국이 어제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했다.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EU를 떠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51.9%가 탈퇴를 선택했다. 1973년 EU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3년 만에 결별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은 EU 리스본 조약에 따라 EU 이사회와 2년간 탈퇴 협상을 벌이게 된다. 상품·서비스·자본·노동력 이동의 자유에서부터 정치·국방·치안·국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이 성사되지 않아도 2년 뒤에는 자동 탈퇴한다. 세계 5위 경제대국의 EU 탈퇴 선언으로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브렉시트 결정은 영국 국민의 반(反)이민 정서와 주권회복 의지가 강한 탓이다. EU에서 탈퇴하면 무역·투자가 위축되고 런던이 국제금융 허브 지위를 잃게 된다는 경고도 먹혀들지 않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선택이라는 악수를 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누가 후임 총리가 되더라도 분열된 나라를 통합할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보일 것이다. 국론 분열을 조장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 때문이다.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등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가시화돼 ‘그레이트 브리튼’이 ‘리틀 잉글랜드’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돈다.

브렉시트는 유럽의 위기다. ‘세기의 정치 실험’으로 불리던 유럽통합운동은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사상 첫 회원국 탈퇴로 유럽 각국에서 EU 탈퇴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극우정당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자유를 위한 승리”라고 치켜세우며 자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했다. 덴마크와 체코 등에서도 EU 탈퇴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EU의 관료주의와 과도한 규제를 개혁하라는 요구도 거세질 것이다. 창설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한 EU가 개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붕괴될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고립주의 확산도 우려할 만하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돌풍과 맞물리면 폭발력이 커질 수 있다. 고립으로는 국제사회의 공동 현안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고립주의의 발흥은 인류의 미래를 어두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예상한 대로 국제금융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주요국의 통화 가치와 주가는 폭락했고 금값은 치솟았다. 우리나라 증시에선 코스피가 61.47포인트(3.09%) 내린 1925.24로 장을 마쳤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는 달러당 1179.9원으로 29.7원이나 올랐다. ‘검은 금요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브렉시트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브렉시트 결정이 세계 경제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리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당장 외국계 자금의 국내 증시 이탈 가능성이 우려된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영국계 자금은 36조원으로 전체 외국인 상장주식 보유액의 8.4%에 달한다. 아일랜드계·네덜란드계 자금도 총 30조원 규모다. 아울러 브렉시트 여파로 영국과 EU 지역 실물경기가 둔화되면 가뜩이나 위축된 우리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는 24시간 합동 점검·대응체계를 가동하고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선제적인 시장 안정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경기침체 속에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벌이는 가운데 브렉시트발 대외악재까지 겹침에 따라 하반기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 보강 규모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브렉시트는 앞으로 국제질서 전반을 뒤흔들 것이다. 정부는 이런 변화를 세밀하게 점검하고 그때그때 적절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단계별 대응 시나리오도 마련해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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