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뇌물 줘야 인증" EU 항의할 때까지 사정당국 뭐 했나

2015. 7.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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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공무원 신분인 연구원이 ‘환경인증’ 권한을 휘두르며 5월까지 6년간 113회에 걸쳐 3200만 원 상당의 뇌물을 받다 경찰에 잡혔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6급 연구원 황모 씨는 수입차의 환경인증 업무를 담당하면서 급행료 명목으로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정부가 공직개혁과 사정(司正)을 강조하는 가운데 한 수입차 업체가 주한 유럽연합대표부(EU-ROK)에 ‘한국 공무원이 고의로 인증서 발급을 지연시켜 뇌물을 받는다’는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적발된 사건이다. EU대표부가 환경부에 ‘한-EU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을 넘어선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다’는 공식 항의문을 내지 않았다면 범행이 적발됐을지도 의문이다. 국제적인 망신이다.

국내에 자동차를 출시하려면 국산차든 수입차든 배출가스와 소음 검사에 합격했다는 환경인증을 받아야 한다. 유럽 수입차는 2010년 체결한 한-EU FTA에 따라 간편한 절차를 거쳐 지체 없이 처리하게 돼 있다. 유럽 차는 한국보다 높은 EU 기준으로 이미 환경인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환경인증 권한을 독점한 교통환경연구소에서 황 씨는 15일 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법적 기한을 무시하고 급행료를 받고서야 1∼2개월 뒤 처리해줬다. 상급기관인 환경부나 국립환경과학원의 감사를 받은 적도 없다. 견제와 감독 시스템의 부재가 황 씨의 전횡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다. 사정기관인 검찰과 경찰도 오랜 기간 황 씨의 범행으로 수입차 업계의 반발이 커질 동안 무엇을 했는지 참 한심하다.

황 씨가 수입차 업계에 자행한 ‘갑질’도 썩은 내가 풀풀 난다. 점찍어 둔 수입 자동차를 검사 대상으로 지정해 인증검사 후 정가보다 34%(약 1100만 원)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 외국이나 지방 출장 때 미리 일정을 알려 식사 및 술 접대를 받았으며 불과 두 달 전에는 같은 날 한 유흥업소에서 다른 업체로부터 두 차례 향응을 받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공직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월 신형 트럭 300대(약 600억 원 상당)를 수입한 한 업체는 환경인증 지연 때문에 소비자들이 계약을 해지해 피해를 보고서도 공무원에게 찍힐까봐 경찰에서 진술을 거부했다고 한다. 정부가 아무리 부패 척결을 외쳐도 국민은 못 믿는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신임 국무총리에게도 부패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주문했지만 황 씨처럼 민원인을 접촉하는 현장 공무원에게 대통령의 영(令)은 먹히지 않고 있다. 규제 권한을 지닌 공무원들의 부패는 그만큼 뿌리가 깊고 구조적이다. 현 정부가 공직 부패 척결을 제대로 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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