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분노하는 시민, 웃는 대통령

2016. 10. 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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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대학가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시국선언이 확산되고, 주말에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예정돼 있다. 어제만 해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단체와 서울대 등 각 대학 총학생회가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는 시국성명을 냈다. 정의당은 대국민 선전전 등 대통령 하야 촉구 행동에 들어갔다.

시민사회의 이런 행동은 전체 시민의 심정을 대변한다. 국정이 비선 권력의 손에 농락당하고, 국가 권력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사태에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시민은 없을 터이다. 대통령은 사과 기자회견과 최씨의 해명 인터뷰 직후 시민사회가 행동에 나선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사태를 대하는 대통령의 의지를 시민사회가 의심하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회견에서 성의없는 사과와 거짓해명을 했을 뿐 진상규명과 성역없는 수사 의지를 내보이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며 귀국 조사를 거부한 최씨의 인터뷰도 시민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국가 위기상황임을 인식하고나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은 그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4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담담한 표정으로 행사를 치렀다. 유공자 포상 때는 간간이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시민 입장에서는 부적절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홈페이지도 대통령이 환한 미소를 짓는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에서 의례적 행사에 참석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도 자문할 일이다.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러는 사이 국정마비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의 날 행사에서도 1000석 가까운 좌석 가운데 4분의 1 가까이가 비었다. 일부 지역 도지사를 포함한 단체장들은 아예 불참했다. 전에 없던 이례적인 일들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대통령이 되는 것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직시하고 청와대·내각 인사쇄신과 진상조사 협조 선언, 권한 이양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국정혼란은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국정운영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국정 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로서 책임있는 행보가 무엇인지 시민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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