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초등생이 요구하는 놀 권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2016. 7. 2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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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지역 초등학생들이 그제 조희연 서울교육감을 만나 학교에서 맘껏 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국제구호기구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 47명이 토론을 통해 정한 ‘교내 놀 권리’를 위한 8가지 정책을 교육감에게 제안한 것이다. 정책 제안은 교실이 좁아 놀기 불편하고 위험하니 넓혀달라, 놀이시간을 늘려달라, 다양한 놀이기구를 만들어달라 등 언뜻 보기에 소박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어린이들을 재단한 데서 나오는 오해일 뿐이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더 절박한 요구가 없다. 놀이는 단순히 열심히 공부하고 난 뒤 보상 차원에서 제공되는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삶 그 자체나 다름없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휴식은 물론 관계를 형성하고 문제 해결 및 조정능력을 습득한다. 놀이는 단순히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심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필수 요소이며, 성적과 공부를 위해 보류하거나 대체해도 무방한 대상이 아니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교육감들이 ‘어린이놀이 헌장’을 제정, 선포한 것도 이런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린이들이 과도한 학습 강요 환경에 노출돼 놀지 못하는 현실을 타파하고 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학교나 가정, 지역 사회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어린이들은 여전히 놀 권리를 침해당한 채 학교에서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학부모나 학교가 놀이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바람에 헌장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가정이나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놀 권리를 강조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놀이 시설과 시간, 친구 등 놀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런 학교에서조차 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어린이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공부와 성적에 치여 제대로 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놀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초등학생들의 정책 제안을 일부 어린이들의 당찬 행동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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