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한 영국과 세계에 드리운 암운

2016. 6. 2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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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설마설마하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24일 발표된 국민투표 결과 영국은 51.9%의 찬성으로 EU 탈퇴를 택했다. EU 주요 4개국 중 하나이자, 세계 5대 기축통화국인 영국의 선택을 두고 ‘역사적 이혼’이란 평가가 나온다. EU의 장래를 두고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주요국들에선 브렉시트를 계기로 고립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인들은 영국인이 브렉시트를 거부함으로써 성장 둔화와 이민자 문제로 시험대에 오른 EU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새 출발하길 기대했지만 물거품이 됐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과정에서 나타난 혼란상은 가장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닌 영국에 걸맞지 않은 것이었다. 브렉시트가 가져올 경제적 실익에 대한 이성적 논의보다 이민자 문제 같은 감성적 이슈가 분위기를 지배했다. 브렉시트로 영국 국내총생산이 5% 감소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20% 하락할 수 있다는 경고는 무력했다. 대신 민족주의, 외국인 혐오증, 고립주의가 횡행했다. 타국 이민자들은 영국인들의 일자리와 복지를 갉아먹는 증오의 대상으로 변했고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나치식 선전선동술도 불사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EU를 히틀러와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 시도에 비유하며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으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극우단체들은 ‘영국이 먼저다’라며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열중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와 난민 문제로 유럽의 다문화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이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국이 EU로부터 받는 수혜금액에서 기여금을 뺀 순기여금액이 마이너스지만 독일이나 프랑스보다는 그래도 사정이 낫다. 지난 10개 분기 성장률도 평균 2.5%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 0.2%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내부 자체의 갈등요인을 외면하고 이민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EU로부터 받는 수혜는 무시한 채 EU에 내는 분담금을 국내로 돌리자는 무책임한 주장을 내세웠다.

영국은 앞으로 EU에서 떨어져나와 각종 자유무역협정을 따로 체결해야 한다. 수출은 어려워지고 파운드화는 불안한 흐름을 보일 것이며 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친EU 성향의 스코틀랜드 독립 요구는 더욱 거세질지 모른다. 격랑 속으로 빠져들 영국도 우려스럽지만 하나의 유럽 구상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브렉시트의 심각성이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통해 1973년 EU 전신인 유럽공동체(EC)에 가입한 후 43년 만에 유럽 통합의 흐름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28개 EU 회원국 중 첫번째 탈퇴국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인들은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향한 비전을 품어왔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시작으로 유럽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를 거쳐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하면서 EU가 출범했다.

인구 5억명,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23%를 차지하는 EU의 구심력이 이제는 브렉시트로 흔들리면서 시험대에 놓였다. 이미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선 탈퇴를 요구하는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정치·군사적 불안정성도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내팽개쳤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이유다. 세계화를 가장 먼저 경험했고 자유무역을 통해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은 영국이 EU 탈퇴를 택한 것은 아이러니다.

브렉시트를 두고 국제사회가 한탄과 아쉬움,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할 수 있어도 영국인들의 선택에 깔린 원인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정치사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시민들은 기성 정치체제에 등을 돌린다는 사실이다.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뺏긴다고 여기는 저소득층이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극화는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 간극을 넓히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요인임을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보여줬다. 영국은 자국의 다음 세대와 유럽, 세계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할 때 브렉시트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파장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영국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주변국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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