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군의 아프간 병원 폭격, 전쟁범죄 가능성 크다

2015. 10. 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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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그제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쿤두즈에서 탈레반과 전투 중 국제의료단체 ‘국경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을 폭격해 의료진 12명과 어린이 3명 등 모두 22명이 숨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비극적 사건’이라며 애도를 표한 뒤 국방부에 진상 규명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오조준에 의한 폭격인지, 인근의 탈레반을 공격하다 벌어진 부수적 피해의 결과인지 단정하기 이르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경없는 의사회가 전하는 폭격 상황은 참혹하고 심각하다. 공습은 집중치료실과 응급실이 있는 병원 본관을 직격했다. 그 때문에 환자들은 옮길 틈도 없이 침대에 누운 채 불에 타 숨졌다. 특히 폭격은 병원 측이 미군과 아프간 당국에 병원이 공격당하고 있다고 통보한 뒤에도 30분간이나 지속됐다. 오폭이 아니라 병원을 겨냥한 폭격이었다는 정황이다. 아프간 국방부가 “테러리스트들이 병원 건물을 정부군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국경없는 의사회는 어떤 전투원도 병원에 없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 병원은 지난 4년 동안 위성항법장치(GPS) 좌표를 아프간 및 미군과 공유하고 있다. 병원 위치를 모를 수 없는 것이다.

미군은 2001년부터 아프간에서 민간인을 여러 번 오폭했지만 이번은 그 성격과 국제사회의 반응이 다르다. 유엔이 이번 폭격을 두고 전쟁범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의료 등 민간시설에 대한 폭격은 국제법상 제한돼 있는데, 미군이 고의로 공격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최근 이 북부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쿤두즈가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쿤두즈 함락은 탈레반이 축출된 뒤 처음으로 아프간 내 주요 도시를 재장악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위기감을 느낀 아프간 정부군과 미군이 탈레반을 조급하게 무리해서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군이 전쟁 중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는 드물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처럼 적군과 민간인이 섞여 있다는 의심하에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런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 상황임을 감안해도 인명 경시가 지나치다. 더구나 미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사과하고 보상하지 않았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번 폭격의 진상을 파악한 뒤 전쟁범죄 여부를 가려야 한다. 미국의 양심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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