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자 잔혹 살해와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

입력 2015. 7. 31.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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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한 마리의 죽음이 전 세계를 공분케 하고 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서부 황게 국립공원의 유명한 13살짜리 수사자 ‘세실’이 지난 27일 공원 외곽에서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면서다. 범인은 취미로 야생동물 사냥을 즐겨온 월터 파머라는 미국인 치과의사로 밝혀졌다. 그는 7월 초 5만달러로 현지 전문 안내자를 고용해 세실을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한 뒤 석궁과 총으로 사냥했다. 세실을 살해한 경위와 동기가 알려지자 안타까움과 분노가 짐바브웨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됐다. 세실의 죽음을 철저히 조사하고 야생동물 사냥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미국 미네소타주 블루밍턴에 있는 파머의 병원 앞은 항의 시위로 북새통을 이뤘다. 지난 30일에는 유엔까지 나서서 야생동·식물의 밀렵과 불법거래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세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인류 보편적 감성의 발로다. 6마리의 암사자와 24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라이언 킹’ 세실은 매력적인 검은 갈기가 특징이었고 사자로서는 드물게 인간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짐바브웨 국민은 물론 사파리투어를 나온 전 세계 관광객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을 정도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팀이 1999년부터 GPS 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를 추적하던 중이기도 했다. 백수의 왕 중의 왕이자 절대적 보호를 받는 국립공원의 마스코트이며 중요한 연구 대상이던 세실이 개인의 취미와 과시를 위한 ‘트로피 사냥’의 제물이 된 것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사냥을 즐기는 부류가 존재하고 아프리카에서 그것이 여전히 허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국제환경보호연합(IUCN)에 따르면 과시용 목적의 합법적인 사냥으로 아프리카에서 매년 600마리의 사자가 희생된다고 한다. 짐바브웨를 비롯한 각 나라가 돈을 받고 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국립공원 밖에서 사냥했다면 합법적이라는 얘기다. 파머가 “사냥 행위를 깊이 후회하지만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강변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야생 사자는 1세기 전만 해도 20만마리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냥으로 최근에는 3만마리로 급격하게 줄었다. 상아와 뿔 때문에 밀렵 대상이 되고 있는 코끼리와 코뿔소도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긴 마찬가지다. 모잠비크에서 지난 5년 동안 코끼리가 절반으로 줄고 코뿔소는 2013년 아예 멸종했다고 한다. 기후변화와 서식지 파괴 등으로 지구상에 많은 생물종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인류에 의한 제6의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도 하는 마당이다. 특히 사자와 같은 대형 야생동물은 각별히 보호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형동물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도 위험하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세실 살해 사건은 그것을 새삼 환기하고 세계가 행동에 나서도록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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