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여군 성추행, 군 스스로 변화할 능력이 없나
한국군은 군대 내 성범죄와 관련해 자기 성찰과 자기 개선의 의지와 역량이 없는 집단으로 보인다. 군 은 성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벌백계’와 ‘근본 처방’을 약속했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유사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군이 스스로 변화할 수 없다면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세계일보가 어제 보도한 육군 모부대 소속 여군 중사에 대한 성추행 사건은 군이 성범죄 사건을 얼마나 경시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여군 중사는 회식 중 선임 중사로부터 성추행당한 뒤 군 당국에 수없이 전화해 호소했지만 군은 4개월 동안 이를 묵살했다. 군은 이 중사가 “내가 죽어야 조사를 해주겠느냐”고 절규하자 그제야 마지못한 듯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군 검찰도 피해자가 고소하자 수사에 들어갔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진급까지 했다. 군당국은 성범죄 예방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부실수사와 솜방망이 처벌을 함으로써 용기를 내 신고한 피해자의 희망을 꺾은 것이다. 국방부가 군 내 성관련 인권침해 신고 및 피해자 상담을 위해 운영하는 ‘국방헬프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상명하복의 군 조직 특성상 상관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하에게 성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여군 상대 성범죄가 일반적으로 진급을 앞둔 시기에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로도 뒷받침된다. 물론 모든 성범죄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범죄라는 점에서 군대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는 사회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남성 우월적 군대 문화가 성군기 문란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성군기 문란은 군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같이 성범죄가 판을 치니 군이 과연 성군기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군에 대한 이런 불신은 자칫 군이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
군대 내 성범죄는 실제 발생한 범죄건수의 다수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범죄의 하나이다. 이는 피해자들이 밝힌다 해도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체념하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군은 더욱 적극적인 성범죄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성범죄 피해 신고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심리적 부담 없이 성범죄 피해 신고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땅에 떨어진 신뢰와 위상을 회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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