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탄저균 반입을 정부는 모르고 있었다니

입력 2015. 5. 2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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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오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민이 언제든 살상력 강한 생물무기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엄중한 사태다. 주한미군은 탄저균 표본을 폐기처분했고, 실험요원 22명은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한 전면적인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책 및 안전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탄저균은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이 90%를 넘나든다. 생물학무기로 쓰일 경우 수소폭탄 못지않은 대량 살상력을 갖고 있다. 다루는 과정에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돼선 안되는 고병원성 위험물질임에도 민간 택배로 국내 반입을 했으니 주한미군의 관리·감독에 큰 허점이 생긴 것이다.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이 탄저균 배달사고를 통보해오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인 일이다. 주한미군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탄저균 국내 반입 사실을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채로 반입할 경우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반입 시엔 살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주한미군은 항변할지 모르겠다. 고병원성 물질 관리를 책임진 기관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주한미군은 배달사고 사실도 내부 조치를 끝낸 뒤에야 뒤늦게 한국 정부에 알렸다고 한다. 주한미군이 과거에도 탄저균을 국내 반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반입 목적이나 수량, 횟수 등에 대해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주한미군이 탄저균 외에 또 어떤 생물무기를 연구·훈련 목적으로 더 반입하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 이러고서야 한국이 주권국가로 자임할 수 있겠는가.

탄저균 배달사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진 정부에 새로운 도전이다. 정부는 1차적으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오산 기지 내 실험실의 안전성과 실험요원의 감염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안전하다”고 판정했지만 국민을 안심시키려면 정부의 확인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이 국내에 들여오는 모든 생물무기 물질의 사전·사후 관리와 통제를 위한 엄격한 감시와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안보상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위험 물질의 국내 반입은 반드시 정부의 검증을 거치도록 해야 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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