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바닥 뒤집듯 정책 번복.. 식물정부 자처하나

2015. 1. 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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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 개편 중단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저소득 지역가입자들에 대한 부담 경감안을 내놨다. 건보료 개편 백지화로 비난이 쏟아지자 이를 의식한 조치다. 하지만 정작 개편의 핵심인 이른바 '고소득 무임승차자'를 막는 방법은 내놓지 않았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면서도 기득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의 행태에 신물이 난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 표류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도 부족할 지경이다. 연말정산 방식 전환은 고소득층에 대한 세부담을 늘리겠다는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교하지 못한 설계 등으로 월급쟁이들의 분노를 자초하면서 땜질처방을 반복했다. 주민세·자동차세는 또 어떤가. 이미 실패로 끝난 주민세 등 인상에 대해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느닷없이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에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다가 반나절 만에 번복 자료를 내야 했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군인·사학연금 개혁안을 포함시켰다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하기도 했다.

정책에 대한 원칙과 소신이 없다 보니 주변 눈치만 살피게 되고, 결국 정책 방향을 바꾸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기득권층의 부담이 늘어나는 개혁작업은 지레 겁먹고 후퇴하면서도 담뱃값·주민세 등 서민부담이 큰 정책은 포기하지 않는 행태를 보면 정부가 국민 행복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건보료 개편은 옳은 취지와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연말정산 파동을 감안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다는 안일함 때문에 무산된 것이다. 고소득층의 불만을 예상해 수십년 만의 건보료 개편 기회를 차버린 정부의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국민은 선심 쓰듯 저소득층에 보험료 몇푼 깎아주는 호혜성 정책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를 원한다. 정책 번복 과정에서 나타난 책임 떠넘기기는 입에 담기도 창피할 정도다. 행정부는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고, 청와대는 해당 부처가 결정할 일이라며 유치한 핑퐁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행태는 스스로 식물정부임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며 급기야 20%대로 접어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국민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공정함과 형평성이다. 여기저기 눈치보고 힘에 밀린 채 정책이 뒤바뀌는 현실에서 신뢰를 얻을 방법은 없다. 더구나 번복되는 정책 대부분이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도그마에 사로잡혀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무리수가 나오고, 또 그 무리수를 합리화하려다 보니 또 다른 변칙이 판을 치는 형국이다. 때마침 여당 정책통들 사이에서도 박근혜식 정책의 한계에 대한 자성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솔직하면 우왕좌왕할 일도, 갈팡질팡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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