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 전 대통령, 남북관계 망치려고 '비밀 대화' 폭로했나

2015. 1. 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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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그가 외국 정상과 나눈 은밀한 대화, 남북 비밀 접촉과 비공개 대화가 상세히 담겨 있다. 회고록에 따르면 2012년 이 대통령이 "(북한의 젊은 김정은이)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참으로 걱정입니다"라고 했더니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며 북한 붕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북·중 간 가장 민감한 문제를 공개한 것이다. 재임 기간에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5차례 이상 비밀 접촉을 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제안했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남북 비밀 접촉 때 북측이 대가를 요구했다며 북한의 지원 요청 목록을 폭로하기도 했다.

북측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비밀 접촉에서 "(남북 합의 없이) 그대로 가면 죽는다"고 했다면서 성과를 위해 남측에 매달리는 가련한 인물인 것처럼 그를 묘사했다. 회고록에 거론된 일화의 주인공 가운데는 아직 현직에 있는 인물도 있다. 현직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관련 분야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도 불과 퇴임 2년 만에 그들의 언행을 공개함으로써 이들의 개인적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은 물론 관련 조직과 당사국도 곤란하게 만들었다.

당장 북한은 이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북한과 이 전 대통령 간 공방전이 전개될 수도 있고 통일부·국정원의 역할을 두고 소모적인 시비가 일 수도 있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분위기 조성이 필요한 지금 과연 이래야 하는지 의문이다. 남북 간에는 비밀 접촉, 비공개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불리한 내용만을 골라 상세하게 폭로하면 앞으로 남북 간 진지한 대화는 어려워진다. 아니, 비밀 접촉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의 재임 중 청와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관한 민감 정보를 자주 공표한 전력이 있지만 그가 퇴임하고도 이토록 무분별한 일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폭로는 5년간의 실패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려는 순전히 개인적인 목적 외에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폭로가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고 남북 대화에 훼방 놓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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