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문 후보, 정치쇄신 경쟁의 결실 맺기를

경향신문

'D-9'.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두 대선 후보의 정치쇄신 대결이 본격화하고 있다. 문 후보가 어제 '대통합 거국내각' 구상을 밝히자 박 후보도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을 내세워 '국정쇄신정책회의' 안을 내놨다. 두 후보의 구상은 너나없이 대결적 정치문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 등으로 인해 뒤늦은 감이 있으나 흔치 않은 정책 대결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국정쇄신정책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해 청와대와 정부 외에 시민대표와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들을 포함시켜 국민의 뜻을 국정에 반영한다는 게 골격이다. 박 후보 측은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를 포함해 야당이 선거운동 기간에 제시한 정치쇄신 공약을 수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통합 거국내각은 연합정치와 공동정부를 두 축으로 해서 시민의 정부를 이루겠다는 얼개를 갖고 있다.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주체가 될 사람들과 단결하고 연합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양측 공히 중도·부동층의 표심을 겨냥한 전술·전략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18대 대선의 화두나 다름없는 '안철수 현상'의 핵심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인 만큼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문제는 양측 정치쇄신책이 포장만 다를 뿐 실은 같은 얘기라는 점이다. 국정쇄신정책회의는 박 후보 지지세력에다 시민대표와 야당 추천인사를, 대통합 거국내각은 문 후보 지지세력에다 시민단체와 합리적 보수를 각각 아우른다고 밝히고 있다. 주체의 차이가 있을 뿐 상대를 국정운영에 참여시킨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서로 베끼다 보니 생긴 일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더구나 안 전 후보 사퇴 후 '안철수 현상'을 승계하겠다고 다짐했던 새누리당은 문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의사를 밝히자마자 안 전 후보 폄훼로 돌아섰고, 시종 '안철수 현상'을 등에 업고 대선을 치르는 민주당은 아직껏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말만 되풀이해온 마당이다. 이쯤이면 누가 집권해도 내용 있는 정치쇄신을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선거에서 정책 대결은 유사점보다 차이점을 놓고 겨루면서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게 마땅하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팽팽하다는 보수·진보의 1대1 맞대결 구도라면 더더욱 그렇다. 궁극적 목표에 대해선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접근법을 둘러싼 차이점이 두 세력을 가르는 경계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변별력을 떨어트리려는 정책 대결은 대결의 포기에 불과하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의 정치쇄신 경쟁 방식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양 진영은 이번 정치쇄신책 발표를 계기로 삼아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정치쇄신 경쟁에 나서길 기대한다. 두 후보가 막판에 정치쇄신 경쟁을 벌인다는 사실은 이번에야말로 쇄신을 실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얘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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