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인공지진과 자연지진

박신홍 2016. 9. 2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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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핫 이슈가 역대 최악의 폭염이었다면 9월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들썩이게 한 속보는 단연 지진이었다. 그것도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북에서는 지난 9일 5차 핵실험으로 규모 5.0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지난 19일엔 규모 4.5의 지진이 잇따라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여진은 이후에도 430회 이상 계속되면서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자연지진은 종파인 P파와 횡파인 S파가 함께 나타나지만 인공지진에서는 S파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 폭발에 따른 음파가 감지되는지 여부도 두 지진을 구별하는 주된 기준 중 하나다. 그럼에도 한번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철저한 사전 대비가 필수인 이유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재난 대비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히 자연지진이 자연재해, 즉 천재에서 끝나지 않고 또다시 인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9분 뒤에야 긴급재난문자를 처음 발송했다. 2차 강진 때 서울 등 수도권엔 아예 문자를 보내지도 않았다. 총리의 첫 지시는 2시간47분 뒤에야 나왔다. 이 같은 정부의 안이한 초동 대처 속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그렇게 강조해 왔던 ‘골든 타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야간 자율학습 때 “금방 사라질 지진이니 가만 있어라”고 했다는 학교는 또 어떠한가. 2년반 전의 “가만히 있으라”를 연상시키는 기성세대의 대처에 자라나는 세대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급기야 “밤에는 장관을 깨우지 말라”는 기상청 지진 대응 매뉴얼까지 공개됐는데, 그럼 세월호 때 해경을 해체한 것처럼 이번엔 기상청만 없애고 말 것인가. 이러니 울산 태화강의 숭어떼가 일제히 바다로 향하거나 부산 광안리에 개미떼가 출몰한 게 대지진의 전조였다는 등 흉흉한 괴담만 떠도는 것 아니겠는가.

건강을 잃으면 천하가 내 것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건강이 우리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바벨탑도 버티고 서있을 재간이 없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상황에선 세상의 권세나 금은보화도 ‘뭣이 중한디’다. 지진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해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인간의 무사유가 악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사유’를 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악습만 반복하는 사회에 대한 계시록 같은 경고다. 자연지진은 자연적인 지진에서 끝내야 한다. 천재보다 백배 천배 더 무서운 게 인재다. 자연지진에 인간의 무사유와 무책임과 무능이 더해져 인공적인 재난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 인공지진 못지않은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할 때다. 지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박 신 홍
EYE24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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