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경쟁을 허하지 않은 죄

조민근 2016. 7. 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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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 차장

“카카오도 지금쯤 ‘아차’ 싶을 거요. 은행이란 게 그리 간단한 비즈니스가 아니거든.”

얼마 전 만난 한 금융지주사 회장은 카카오가 주도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미래가 그리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견제 심리에서 비롯된 얘기는 아니었다. 그는 “일단 은행이란 이름을 다는 순간 그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규제와 맞닥뜨릴 것”이라며 “우리야 워낙 그런 환경에 익숙하지만 IT(정보기술) 업체가 쉽게 적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실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일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는 4대 금융지주의 부사장을 불러모았다. 이 자리에선 “멤버십 서비스에서 과당경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출혈경쟁이 벌어지면 그 비용이 결국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마치 감독 당국은 은행들이 어느 선까지 경쟁해야 소비자 이익이 최적화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식이다. 게다가 금융 당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 국내 은행산업이 정체됐다며 경쟁을 독려해왔다. 인터넷은행이란 ‘메기’를 풀어놓고 핀테크 육성책, 계좌이동제까지 꺼내들었다. 모바일 멤버십 서비스도 은행들이 이런 분위기에 호응해 들고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감독 당국의 ‘우려’가 나오자마자 군말 없이 마케팅 속도조절에 나섰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면 금융지주사 회장의 말대로 은행이 ‘간단치 않은 비즈니스’인 건 확실해 보인다.

‘전지전능’한 금융 당국과 수동적인 은행은 대형 스캔들을 빚어내기도 한다. 최근 결론이 난 양도성예금증서(CD) 담합 의혹이 대표적이다.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들이 CD 금리를 담합한 혐의가 있다며 조사에 들어갔다. 시장 금리는 떨어지는데 가계대출의 지표인 CD 금리는 꿈쩍하지 않았으니 의심을 살 만했다. 은행들은 항변 대신 금융 당국을 쳐다봤다. 당시 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협조 요청에 사실상 억지로 CD를 발행하고 있었다. 예대율 규제가 강화돼 은행 입장에선 CD를 발행할 이유가 확 줄었는데 단기 지표금리 역할을 대신할 대체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숨만 붙여 놓고 있었으니 가격기제가 작동할 리 만무했다. 공정위 조사에 당황하는 은행들 앞에 금융 당국은 다시 ‘구두 지도’를 하고 나섰다. 조사가 한창인 상황에서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은행들이) 담합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례적인 발언을 했다.

‘금융 당국-은행 연합체’에 맞서기엔 공정위의 칼 끝은 너무 무뎠다. 은행들이 유명 로펌들로 진용을 꾸려 방어 논리를 탄탄히 갖추는 사이 공정위의 담당 과장은 세 차례나 바뀌었다. 결국 공정위는 21일 심의절차 종료를 선언했다. 담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한 가지 확실해진 건 있다. 담합까진 몰라도 은행들 사이에 경쟁도 없었다는 것이다. 경쟁이 없을 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건 소비자다. 이번엔 누군가 내지 않아도 될 이자를 냈다. 이를 방조 내지 방치한 것만으로도 금융 당국은 유죄다.

조민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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