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콩나물에 물 붓기

박신홍 2016. 5. 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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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사회부문 차장

지난해 여름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서부 여행을 다녀온 젊은 부부는 출발 전부터 주위의 강한 만류에 직면해야 했다.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다, 일정만 지체될 거다, 돈 낭비다. 모두들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부부만 떠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예정대로 아이를 데려갔고, 무사히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멋진 추억과 함께 돌아왔다.

부부는 ‘콩나물에 물 붓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커서 기억은 전혀 못해도 이것저것 최대한 많이 보여주면 무의식 속에라도 뭔가는 남아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했다. 그 막연한 잔상들이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데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 바람대로 아이는 요즘도 그때 사진만 보면 신이 나서 엄마·아빠와 함께 웃고 떠든다고 했다.

천하가 내 것이라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건강과 골프, 그리고 자녀다. 그래도 현대의학과 과학기술의 힘으로 두 가지는 웬만큼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자식만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왜일까. 이는 자녀를 소유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은 아닐까. 소유는 집착을 낳고, 집착은 갈등을 낳는다. 잔뜩 움켜쥔 손안의 케이크는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항변할 수 있다. 다 애들 잘 되라고 이러는 거라고. 나만큼 아이를 위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지만 아이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자식은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은 환상이기 쉽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통계에도 잘 나타난다. 엄마와 일주일에 한 시간도 대화하지 않는다는 청소년이 44.5%였다. 아빠는 63.2%로 뛴다. 대화 시간이 이럴진대 속마음을 털어놓길 바라는 건 언감생심이다. 영화 ‘로봇, 소리’에서도 주인공 아빠가 넋두리를 하지 않던가. 대학생 딸이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는 걸 10년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고.

84년을 해로한 미국의 존&앤 베타 부부는 최근 인터뷰에서 “배우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마라”고 조언했다. ‘배우자’를 ‘자녀’로 바꿔도 똑같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게 관계 정상화의 첫 단추일 수 있다.

오늘도 자녀와 갈등을 빚었다면 한번쯤은 소유가 아닌 존재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녀는 내게 잠시 맡겨진 존재라고. 홀로 설 때까지 고이 잘 기르면 부모로서의 책임은 다하는 것이라고. 좋은 추억들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고. 잠시나마 움켜쥔 손을 펴고 콩나물에 물 붓는 심정으로 돌아가 보자. 그러면 오히려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질 수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박신홍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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