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정부의 염치

조민근 2016. 5. 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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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더없이 곤궁한 처지를 빗대 흔히 ‘땡전 한 푼 없다’고 한다. 땡전은 1866년 발행된 당백전(當百錢)에서 유래했다. ‘당백전→당전→땡전’이 됐다는 게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설명이다. 당백전은 액면 가치가 상평통보의 100배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초고액권이 쓸모없는 돈의 대명사격이 됐으니 아이러니다.

대원군은 집권 뒤 스러져가던 조선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한 개혁에 돌입했다. 상징적 사업으로 경복궁을 중건하고 끊임없이 출몰하는 이양선에 맞서 군비 강화도 추진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재정 개혁을 시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게 당백전이다. 화폐 남발의 결과는 참혹했다. 물가는 급등했고, 시장의 불신에 경제는 오히려 위축됐다. 당백전은 ‘땡전’으로 전락했고, 대원군의 개혁 역시 동력을 잃고 좌초했다.

요즘 정부에선 ‘한은 역할론’이 연일 나온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선 국책은행에 ‘실탄’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재정으론 어려우니 한은이 전면에 나서 달라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개혁도 돈이 있어야 한다. 일단 이주열 한은 총재는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고 있는 그의 심사가 편치는 못할 것이다. 내부 반발 기류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저류에는 ‘당백전의 공포’가 있다. 한은 노조는 “재정적자는 불량식품이지만 발권력 동원은 마약과 같다. 당백전을 발행한 조선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은이 곤혹스러워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재정 보완을 위해 돈을 찍으라는 건 마치 골키퍼에게 하프라인을 넘어 공격에 가담하라는 주문과 같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급한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은을 거칠게 압박하는 태도는 반발의 크기를 키워 부작용만 부를 뿐이다. 특히 익명에 기대어 언론에 ‘한은의 무책임’을 성토하는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한다. 무책임의 크기로 따지면 그간 좀비 기업을 연명시키느라 국책은행을 거덜낸 정부와 ‘낙하산 기관장’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한은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구조조정 재원 마련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 등에 대해선 여지를 닫아버렸다.

오늘 기획재정부와 한은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 태스크포스’가 첫 회의를 갖는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이뤘다지만 구체적인 방법론, 타이밍을 놓고 진통은 불가피할 것이다. 발권력이 필요하다면 정부는 한은을 압박하는 대신 진정성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 재정·통화 당국이 공식적으로 머리를 맞댄 만큼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논의, 그리고 성찰도 함께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부터 회의장에 염치를 꼭 챙겨갔으면 한다.

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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