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한 방'의 추억

조민근 2016. 2. 1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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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판이 나오는데…오히려 그게 거시경제 정책의 본질이 아닐까요?”

사석에서 만난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반문에선 불만이 짙게 배어 나왔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기 보강 대책’에 대한 언론의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탓이다. 대책은 수출이 급감하고, 이른바 ‘소비절벽’에 내수까지 얼어붙을 조짐이 보이자 급히 내놓은 응급 처방이었다. 내용은 그리 새로울 게 없었다. 하반기에 쓸 재정을 최대한 당겨서 투입하고,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정책자금도 일찌감치 풀겠다는 게 골자였다. 여기에 지난해 말 마감했던 승용차 개소세 인하 카드도 다시 꺼냈다. ‘소비 돌려막기’ ‘재탕 대책’이란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조삼모사 본질론’은 이에 대한 관료의 솔직한 항변이었다. 말하자면 정책이란 게 한정된 수단을 활용해 최대한 경기의 진폭을 줄이는 것일 뿐 ‘한 방’은 있을 수 없고, 그리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화끈한 대책’은 시차를 두고 ‘화끈한 후유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어쩔 도리가 없을 때 ‘한 방’이 나오곤 한다. 대표적인 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했던 무제한 돈 풀기, 이른바 ‘양적완화’였다. 덕분에 미국 경제는 좀 살아났지만, 전 세계가 그 뒷감당을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3기 경제팀의 처방전이 유독 초라해 보였던 건 아마도 2기 경제팀이 구사했던 화끈한 조치들과 대비된 때문인지 모른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부동산 규제를 풀고, 재정과 기금을 대규모로 투입했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잇따라 내리며 보조를 맞췄다. 덕분에 세월호·메르스 악재까지 겹치며 끊어질 것 같던 경기의 숨을 붙여놓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한 방’ 탓에 재정 곳간은 눈에 띄게 축났고, 가계 빚과 좀비 기업 등 ‘설거지’ 거리는 잔뜩 쌓였다.

문제는 ‘한 방’ 기대심리에서 엿보이는 정책 금단현상이다. 부쩍 약해진 우리 경제의 내성을 생각하면 소비절벽, 재정절벽, 투자절벽 등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절벽 시리즈’가 기다리고 있을지 겁난다. 여기에 총선과 대선 같은 정치 일정까지 더해지면 ‘한 방의 추억’, 혹은 ‘한 방의 유혹’은 더 강렬해질 것이다.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개혁을 하겠다면서 한편으로는 일자리 확대를 경제정책의 중심에 놓겠다는 3기 경제팀의 선언에서 그런 전조가 엿보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한은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유일호 부총리의 발언도 시장은 전임자의 ‘척하면 척’의 변형된 버전으로 읽고 있다. 절벽과 단기처방의 반복으로 그나마 조삼모사가, 조이조삼, 조일조이, 마침내 조영모영이 되는 대책 없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조민근 경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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