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차관’이 될 공무원

중앙일보

김영훈경제부문 차장 공무원 사회의 우스개 하나. 차관(次官)은 '차(車)에 있는 관료'로 불린다. 차관이 가야 하는 회의·행사가 워낙 많아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얘기다. 장관의 일정 변경으로 예정에 없던 대리 참석도 해야 한다.

 이제 공무원 모두가 차에서 시간을 보내는 '차관(車官)'이 돼야 할 판이다. 세종시 이전 때문이다. 꽤 많은 이가 세종시에 집을 구하는 대신 왕복 4시간 출퇴근을 선택했다. 일단 상황을 살펴본 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불안하다는 뜻이다. 두어 달 후면 양자택일을 할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주거지를 옮긴 이도 있지만 기러기 처지가 될 이도 적지 않다. 맞벌이 등 이주를 강요하지 못할 사정이 다 있다.

 문제는 업무다. 누구나 경험적으로 안다. 집안이 편하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걸. 고참 공무원은 걱정한다. "가까이 있으면 별일 아닌 것도 떨어져 있으면 신경 쓰이지 않겠나." 개인사 걱정이 아니다. 일 얘기다. 불안한 주거는 공무원의 삶 속에서 업무의 '시간 점유율'을 하락시키고, 집중도를 낮출 게 뻔하다.

 잠자리만이 아니다. 청와대가 서울에 있다. 각종 행사도 거의 서울에서 열린다. 무엇보다 행정부의 '갑'인 국회가 서울에 있다. 서울 올 일이 부지기수다. 이미 정부대전청사에 둥지를 튼 각종 공공기관은 '차관'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여·야 대치로 국회가 열릴지 말지 아리송한 날이었다. 무작정 서울로 가기도, 대전에 있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나온 게 톨게이트 앞 대기다. 고속도로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있다 여차하면 달려가기 위해서였다. 세종시 청사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알고 있다. 이미 되돌이키기엔 너무 많이 왔다는 것을. 바꿔보려던 시도는 허사가 됐다. 이사 시점을 대선 코앞으로 잡은 정치 기술도 작용했다. 완전한 실패를 확인하지 않는 한 다시 이삿짐을 쌀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게 해선 안 된다.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내 세금으로 월급 주기 때문이다. '옮기느냐 마느냐'는 논란은 컸는데, 옮긴 이후 효율성 제고에 대한 논의는 적다. 공무원 사회의 '총무'인 행정안전부가 서울에 남으니 더 그렇다.

 국회가 옮기면 최선이겠다. 어렵다면 국정감사라도, 상임위원회의 절반쯤이라도 세종시에서 하자. 공무원이 오느니 국회의원이 가는 편이 효율적이다.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 쪽에선 사람도 자료도 많이 동원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질의할 의원의 짐은 단출하다. 마침 여야가 기득권을 버리고 쇄신하겠다고 선언한 판 아닌가. 평균적으로 볼 때 지역구 가기도 서울보다 세종시가 편하다. "그럼 우리는 의원이 아닌 '차원(車員)'이 되란 얘기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러는 편이 나라 전체 효율에선 더 나아 보여서 하는 제안이다.

김영훈 기자filic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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