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35] 차라리 잘됐다, 김영란법!

이현 2016. 7. 2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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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 담긴 작은 쇼핑백이 처음이었다. 수습기자 딱지도 떼기 전, 립스틱을 촬영하러 나갔다가 “신제품인데 써보시라”며 건네받은 선물이었다. 고가 브랜드는 아니지만 여러 종류가 담겨 5만원은 충분히 넘을 것 같았다. 회사로 돌아와 부장 앞에 쇼핑백을 들고가 받아도 되는 건지 물었다. 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수십만원짜리면 토해내고 아니면 그냥 쓰라고 했다. 기업 입장에선 자사 제품을 길 가는 행인한테 나눠주는 것보다 기자들이 써보는 게 홍보효과가 크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 후로도 종종 ‘작은 선물’들을 받게 됐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앞두고 집으로 배달돼 온 선물들도 있었고, 출입처의 기사 브리핑이 끝나면 동료 기자들과 함께 식사 대접을 받기도 했다. 때때로 메뉴판에 적힌 값비싼 식사 가격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도 있었지만 ‘내가 계산할 거 아니면 유난 떨지 말자’ 싶어 침묵했다. 친한 동기들끼리 서로를 ‘구악(舊惡)’이라 놀리며 죄책감을 덜어냈고, 이런 관행에 점차 익숙해졌다.

경제산업부 발령을 받고 유통 분야를 맡게 됐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출입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업체가 많은데다 홍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몇몇 선배들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작은 혼수품 정도 장만 못하면 바보”라고 놀렸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이고 세상은 변한 모양이다. 내가 부지런하지 못한 탓인지, 유통업계의 기록적 불황 탓인지 다행히 아직 크게 시험에 들 일은 없었다.

지난주 기자간담회에 대신 보냈던 후배가 회사에 복귀해 “이런 걸 나눠줬습니다” 하며 4인용 식사권이 담긴 봉투를 쭈뼛쭈뼛 건넸다. 후배의 심란한 마음과 고민이 묻어났다. 5년 전 내 모습도 떠올랐다. 최근 일부 언론이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집중 보도하는 걸 보며 열 받은 젊은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사립학교 교사까지 포함되는 마당에 언론사 기자들은 김영란법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는 논리 자체가 부끄러웠다. 언젠가 이 낡은 관행을 끊지 않으면 후배의 후배 기자들까지 불편한 마음과 고민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손해를 볼 한우 농가와 식당 등 마음에 걸리는 쪽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애매한 경우가 많아 진통은 겪겠지만 차라리 잘됐다. 5만원이 넘든 안 넘든, 대가성이 있든 없든, 적어도 이 법 때문에 최소한 고민이라도 한번 해볼 것이 아닌가. 앞으로 ‘작은 선물’은 사라지겠지만 마음은 더 편안해질 것 같다. 더치페이를 해야 한다면 저녁 술자리에 “많이 먹을 돈이 없네요” 하며 일찍 털고 일어설 명분도 생기고 말이다.

이 현 JTBC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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