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35] "너무 아침이 조용한 나라" 섹스리스 코리아

구혜진 2016. 7. 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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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

“우리 아빠는 TV 볼 때 가끔 엄마 가슴을 만지면서 봐. 이상하겐 아니고. 그냥 편한 애정 표현 정도?”

9년 전 친구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란 충격보단 부러움이 밀려왔다. 친구의 태도에도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자식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연애하는 부모님이라니. 정당한 자부심이다. 부부(夫婦)의 정의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 시대 중년들의 가장 보편적인 연애는 불륜이라는 우스개까지 나도는 세상 아닌가. 7년 전 남자친구네 집을 방문했다가 어머님에게 다정하게 ‘색시’라고 부르는 아버님을 보고 결혼을 결심한 것도 그때의 부러움이 남아서다. 

TV 예능에선 “마누라가 친정 가서 좋다” “마누라 보기 싫어 일부러 늦게 들어간다”란 말이 넘쳐난다.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하는 말이다 보니 겸손을 위해선 결혼한 상대를 낮추는 게 예의처럼 느껴질 정도다. 

내 또래들도 벌써 이 화법에 적응했다. 막상 집에 가면 꿀 떨어지는 부부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의아하다. 아무리 따져봐도 도무지 득될 게 없는 얘기라서다. 불행한 결혼 생활 인증은 아내한테도 자신에게도 독이 되는 얘기다. 내가 모르는 숨겨진 코드가 있는 걸까. 결혼은 불행하다며 서로 안심시키거나 어차피 늦어질 퇴근을 위안 삼는 면피용 멘트는 아닐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 나라 사람들에겐 ‘운수 좋은 날’의 김 첨지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다.  

최근 기사를 보면 말뿐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 성인 부부 35.1%는 한 달에 1번 이하의 관계를 맺는 섹스리스(Sexless) 부부다. 세계 평균 20%, 미국 평균 6%에 비해 월등히 높다. 섹스리스 부부는 결혼만족도도 10점 만점에 1점 가까이 낮았다.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직장 피로도 한몫하겠지만 사랑 없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가족끼리 왜 이래”라며 성욕이 동할 리 없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커뮤니티엔 ‘너무 지나치게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oo much morning calm country)’라며 결혼 후엔 사랑도 섹스도 없는 한국인의 불행에 대해 보고 들은 경험담을 펼치며 논쟁을 벌였다. 

‘츤데레(속으론 좋아하면서 겉으론 차갑게 대하는 성격) 열풍’이라지만 결혼 후에도 츤데레면 죄다. 사랑 담은 말 한마디에 고통은 녹는 듯 사라진다. 며칠 전 늦은 퇴근 후 집에 가니 남편이 뛰어나와 안아준다. “이 순간을 위해 오늘 쉴 새 없이 일하고 상사의 히스테리도 견뎠어!”라며. 나도 그 순간을 위해 하루를 산다. 이제 우리 표현 좀 하고 살자. 동방예의지국도 좋지만 아침까지 과도하게 조용할 필요가 있을까.

구혜진 JTBC 사회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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