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35] 빚 권하는 사회

정종훈 2016. 7. 1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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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빚이라는 단어가 참 생소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부모님 덕분에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고도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녔다.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할 때도 보증금이든 월세든 부모님이 내주셨고 ‘내 돈’은 없었다. 10원이라도 빌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계기로 경제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신혼 전셋집을 구하고 소형 자동차를 하나 샀더니 한순간에 카드 빚과 은행 대출이 수천만원이 됐다. 어떻게든 회사와 가까운 서울에 살아보려고 고심 끝에 아파트 분양까지 받았더니 눈 깜짝할 새 빚이 수억원으로 늘어났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빚도 재산’이라고 스스로 되뇌는 동안 오늘도 대출 이자는 쌓여간다.

전셋값이 치솟는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월세, 보증금도 급격히 오르기는 마찬가지다. 혼자 생활하는 직장인, 대학생은 물론이고 젊은 맞벌이 신혼부부도 주거비를 감당 못해 허리가 휜다. 서울에 머무를 형편이 안 돼 경기도로 빠져나가는 젊은이도 많다. 전세 보증금은 계약기간 2년이 지나면 수천만원 인상이 기본. 은행 대출을 아무리 받아도 재계약은커녕 외곽으로 밀려난다. 이미 서울시 인구 1000만 명이 붕괴됐고 수도권에서 서울로 오가는 출퇴근 전쟁은 더욱 치열하고 고달파졌다.

빚은 이제 대학 시절부터 친숙한 현실이 되고 있다. 2009~2015년 학자금 대출을 받은 누적 인원은 327만 명, 금액은 14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자가 별로 싼 것도 아니다. 올 1학기 학자금 대출 이율 2.7%는 은행 가계대출 금리(5월 기준 3.16%)보다 크게 낮다고 볼 수 없다. 학자금 대출 채무를 갚지 못하는 청년도 지난해까지 2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런데도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달 초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무이자 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빚이 있어야 학생들이 파이팅을 한다”고 말했다. 고소득층 학생일수록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장학재단 말고 대출재단으로 이름을 바꿔라” “‘요즘 학생들은 도전의식이 부족해. 예전에 배고플 땐 말이야…’ 식의 전형적인 꼰대 의식 아니냐”는 청년들의 분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졌다. 안 이사장 말대로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그러니 참아라)’는 것인가.

“이 조선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남편)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아내) 1921년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의 일부분이다. 일제 강점기 지식인 청년을 다뤘지만 술 대신 ‘빚’, 조선 대신 ‘한국’으로 바꿔보면 곧 우리네 자화상이다. 젊은이들에게 희망 대신 부담과 체념을 권하는 사회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정종훈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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