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 여현호

2016. 5. 2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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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ㄱ변호사의 점심은 소박하다. 대개 단골 식당에서 사무실 동료들과 김치찌개나 1만원대 김초밥 등을 먹는다. 돈다발을 들고 오는 의뢰인은 없다. 수임료는 많아야 500만원, 1천만원이다. 그는 능력이 떨어지는 변호사가 아니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 최우등이었고, 준비서면이나 변론을 접한 판사들과 관련 학계가 두루 인정하는 실력파다. 법원이나 검찰을 거치지 않았을 뿐이다.

ㄱ변호사의 연수원 동기인 홍만표 변호사는 월세를 받겠다고 사 모은 오피스텔이 100여채다. 검사장 퇴임 뒤 2012년 말까지 16개월 동안 105억원을 벌었다고 신고했다. 건당 1억3천만원이다. 정작 하는 일은 많지 않았던 듯하다. 준비서면이나 의견서를 낸 흔적이 별로 없다. 주로 검찰 수사 단계에서 맡았으니 검찰에 뭔가 ‘작용’했겠지만 어떻게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적어도 검찰 경력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관예우에 대한 법원·검찰의 입장은 ‘그런 것 없다’였다. 전관예우는 궁박한 의뢰인과 브로커 등이 만든 허상일 뿐, 법관이나 검사들은 전관이 맡은 사건을 오히려 더 엄격하게 대한다고 말해왔다. 사실이 아니었다. 다는 아니라지만 전관들은 분명한 ‘성과’를 냈다.

홍 변호사는 2012년 수원지검의 용인경전철 비리 수사에서 대림산업의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 애초엔 대림산업 등 컨소시엄의 변칙 회계와 하청업체 리베이트 등이 핵심 의혹이었는데, 토착 하도급업체 몇 곳만 기소됐다. 1조원대 대형 공사에서 탈없이 빠져나온 회사로선 수임료 3억5천만원이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와 관련해 사기 혐의로 고발된 이석채 케이티 회장도 2억원에 홍 변호사를 선임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런 성공담 때문에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도 그를 선임했을 것이다. 기대대로 정씨는 제보가 곧 증거라는 해외 원정도박 사건에서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처분에 영향을 끼치려는 ‘전관’이 있다면, 처분을 한 ‘현관’도 있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더라도 ‘정황’이 뚜렷하다면 현관 역시 그 해명의 책임을 지는 게 온당하다. 예컨대, 회삿돈 횡령 여부가 중요한 수사대상인 기업인 도박 사건에서 횡령 정황을 확인하고도 기소 때 이를 뺐다면, 그런 처분의 결정과정에 있는 이들을 추궁하는 것은 당연하다. 양형 부당으로 항소한 검찰이 1심 때보다 되레 구형량을 낮추고 그에 앞서 연수원 동기인 담당 변호사와 부장검사가 만났다면, 비리 여부를 해명하라고 따질 수밖에 없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같은 수법을 동원해 딴 데서 모은 돈으로 ‘돌려막기 변제’를 한 것이 더 괘씸하다며 1심이 징역 4년을 선고한 사기 사건에서, 2심 재판부는 경위야 어떻든 피해가 회복됐다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동향의 선후배인 항소심 변호사와 재판장의 전화통화도 잦았다고 한다. 변호사가 재판부에 힘을 쓴다는 말도 녹취됐다. 혁혁한 성공을 거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곧바로 수십억원을 받고 다른 사건을 수임했다. 의심스런 정황 끝에 동료 판사도 수긍할 수 없는 판결이 나왔다면 이를 해명하는 것은 해당 재판부를 비롯한 법원의 몫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박수를 쳐 소리가 났다면 한쪽 손바닥만의 일일 수 없다. 홍 변호사 소환을 계기로 ‘현관’들에 대한 수사도 본격화해야 한다. 전관의 부당한 활동을 ‘현관’이 먼저 신고하고 해명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다른 손바닥이 마주치지 않는다면 애초 박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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