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엿 먹이지 맙시다 / 정남구

2016. 5. 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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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엿은 달다. 맥아당이 주성분이다. 맥아당은 포도당(혈당) 두 개가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먹으면 몸에 아주 빨리 흡수돼 에너지를 만든다. 엿을 많이 먹으면 배고픈 것을 잊고 입맛이 없어진다. 옛날에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엿을 건네줬다고 한다. 맥아당의 작용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엿이 달라붙듯 시험에 척 붙으라는 뜻이었을 게다. 엿은 달기도 하지만, 아주 끈적끈적하기도 하다.

‘엿을 먹인다’는 말의 뿌리가 될 법한 중국 전설이 있다. 북방을 다스리는 천제 ‘전욱’의 아들 가운데 ‘궁선’이란 이가 사람들과 친한 부뚜막신이었다. 그이는 해마다 섣달 스무사나흘에 하늘에 올라가 세상 사람들의 일을 천제에게 고했다. 사람들은 부뚜막신이 천제에게 자신의 일을 나쁘게 말할까봐 그날 제사를 지내주었다. 이때 제수 가운데 꼭 엿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부뚜막신이 이 엿을 먹으면 입이 딱 들러붙어서 천제께 말을 할 때 우물거리며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니 결국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냥 흐지부지 끝내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위앤커, <중국신화전설1>)

기자란 직업은 부뚜막신과 하는 일이 비슷하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잘못하는 일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엿을 먹고 입이 달라붙어 버리면 말을 얼버무리거나 침묵하게 된다.

경제 기자 초년시절부터 참으로 고민스런 것이 ‘선물’의 처리였다. 인정으로 볼 수 있는 정도의 것이 많지만, 선물이라기엔 과한 것도 가끔 있었다. 한번은 명절 때 적잖은 선물이 배달돼 곤혹스러웠다. 고민 끝에 사회복지단체에 연락했더니 좋다고 하여 갖다줬다. 두어 해 그렇게 했는데 역시 찜찜했다. 남이 보내준 선물을 가지고 내가 생색을 내는 것 같아 불편했다. 결국 모든 선물을 거절하기로 했다.

선물과 결별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어떤 것은 선물이고 어떤 것은 엿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니 모든 걸 다 거절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할 때가 있다. 이사를 한 뒤 주소를 감추고, 선물을 보내겠다는 이들에게 뜻을 말했다. 유통업체를 통해 주소를 묻는 전화가 오면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했다. 그래도 주소를 알아내 보내버리기도 한다. 돌려보내면 되는 일인데, 간혹 무인택배함에 말없이 두고 가버릴 때가 골칫거리다. 며칠이 지나 상했을 수도 있는 물건을 돌려보낼 때는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입이 달라붙으라고 보내는 것은 작든 크든 선물이 아니다. 나는 엿을 먹고 싶지는 않다. 대부분의 공직자가, 대부분의 언론인이 그럴 것이다.

이른바 김영란법에 언론인을 적용 대상으로 포함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직자가 아니니 법으로 통제할 게 아니라 직업윤리로 해결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게 위헌인지는 헌법재판소가 가릴 테니 거론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언론인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 이유를 되새겨보려고 한다.

정남구 논설위원

김영란법 시행령은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을 한도로 정했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지나치게 엄격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 법 때문에 잘못도 없이 괴로움을 겪을 이도 있을 것이다. 꽃을 재배한다는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은 전업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매끄럽게 새 길을 열지 못하는 게 미안하다. 서로 엿 안 먹이는 세상을 위한 일이니 헤아려주시길 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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